[감상문] 팔만대장경
- 최초 등록일
- 2005.02.01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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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 경판이 만들어지던 때는 고려가 몽고와 전쟁을 치르던 중이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위험한 상황 하에서도 경판을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이유는 무엇일까? 강화도에는 아직도 고려궁지가 남아 있다. 이곳은 1232년부터 36년 간 고려의 도성의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몽고가 침입하자 당시 무신정권의 실력자였던 최우는 천도를 단행하였다. 하지만 천도는 백성을 버렸다는 불신을 낳게 되었고, 그러자 최우는 민심을 수습하는 방편으로, 대장경 사업을 벌이게 된 것이다. 최우가 경판 제작에 재산을 내놓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 것이다. 당시 뿌리깊었던 백성들의 불심을 자극해서, 민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또 하나의 배경은 불교국인 고려의 위상에 있다. 고려는 현종 때인 11세기 초에 이미 대장경판을 만들었다. 이것을 초조대장경이라고 하는데, 이 경판의 완성은 고려에 불교문화국이라는 자부심을 안겨다 주었다. 그런데 1232년, 몽고는 초조대장경판과 의천이 간행한 목판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따라서 고려는 불교문화국으로서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이렇게 엄청난 국책사업을 벌이게 된 것이다. 또한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자주성을 보였다. 중국의 연호가 아니라 십이간지에 따라 연도를 표기했고, 고려국을 명시했으며, 황제의 명령을 뜻하는 '봉칙'이란 단어도 당당히 내세웠다. 이처럼 대장경이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무신정권의 정치적 의도와 다른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렇게 큰일을 완성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고려인 전 계층의 불심과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 목판본중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 수록된 불교 경전 또한 엄청난 양이다. 게다가 그 정확도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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