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 사비성 목간 31자의 비밀(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5.02.01
- 최종 저작일
- 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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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비시대에는 남북도로와 동서도로가 교차하고 있고 또다시 동쪽으로 남북도로가 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남북도로와 동서도로가 일정한 간격으로 교차해 하나의 네모난 구획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 지역은 백제시대 때 정한 도시계획 프로그램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발굴된 근거들을 가지고 당시 백제시대 당시의 사비성의 규모라든지 구조 라든지를 추리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부여시내 또 다른 지역에서 동-서 방향의 도로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비시대의 백제 사람들이 정확한 방위를 알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영상물에서는 백제인들이 어느 정도의 방위측정 능력이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백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을 확인해 보았고, 그 결과 세우는 과정에서 생겼을법한 2.5도 정도가 틀어진 채, 북쪽을 향하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별자리 분석 결과 현재처럼 북극성을 기준으로 한 것도 아니라니 백제인들의 방위측정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백제는 당시 지금의 국립천문대와 같은 기관을 두어 많은 학자들이 별을 연구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늘의 북쪽이 어딘지 동쪽이 어딘지를 관찰할 수 있는 상당한 기술을 습득했다고 한다. 정립사지 탑을 근거로 동서도로와 남북도로의 정확성도 어느 정도는 입증된 것이 되었다. 이는 결국 부여의 도시계획에 있어 전시가지를 놓고 계획적으로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통일된 각도가 나왔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부여는 철두철미하게 계획된 도시였다. 사비시대 도성안의 도로들은 정확히 남북과 동서방향을 향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렇다면 도시 내의 각 구획은 이렇게 정확히 네모모양을 갖게 된다. 지금의 신도시처럼 바둑판모양의 도시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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