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정치사]고려중앙정치
- 최초 등록일
- 2005.01.17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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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추원과 삼사는 송제(宋制)에 따라 설치되었다. 중추원은 출납(出納) 숙위(宿衛) 군기(軍機)의 일을 담당하였는데, 상층부에추신(樞臣)이 있고 하부에 승선(承宣)이 있었다. 중추원의 추신은 '칠추(七樞)'라 하여, 중추원판사·원사·지원사·동지원사·부사·첨원사·직학사를 가리켰다. 이들은 재신과 더불어 국정운영의 핵심을 담당하였다. 승선은 왕명을 출납하는 일을 맡았다. 충렬왕 초에 추밀원은 밀직사로 바뀌면서, 군정(軍政)을 관장하기시작하였다. 삼사는 중외전곡(中外錢穀) 출납회계(出納會計)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도병마사는 식목도감과 함께 고려 독자적인 정치기구였다.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은 재신과 추신이 모여 국가 내외의 중대사를 회의 결정하는 기구였는데, 도병마사는 변경·군사·대외문제를의론하였음에 대해 식목도감은 대내적인 법제 격식 문제를 결정하였다. 도병마사는 재추로 임명된 판사(判事)·사(使)와 부사(副使)·판관(判官) 등 12인과 녹사(錄事) 8인, 그리고 이속(吏屬) 25인으로 구성되었는데, 정식 회의원은 역시 판사와 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도병마사는 무인집권기에 별로 기능을 못하다가 고종 후년에 가서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전과는 달리국방 군사관계에 한정되지 않고 중요 국사 전반에 걸쳐 합좌하는 '도당(都堂)'이 되었다. 충렬왕 5년(1279)에 도평의사사로 승격되면서, 그 구성과 기능이 크게 확대되었다. 삼사도 재추와 함께 재상으로서 도당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합좌하는 재추의 수가 증가하였다. 아울러 단순한 희의기관이 아니라 행정기능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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