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열하일기 사료분석
- 최초 등록일
- 2004.12.30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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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4년)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 압록강을 건너 성경, 산해관, 북경을 거쳐 청나라 황제의 하계별궁이 있었던 열하(지금의 承德)를 여행한 중국 여행기이다. 조선시대의 중국 여행은 당시 외교사절인 使行을 따라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 목적지도 대체로 북경이어서 여행기 표제도 '연행록'이라고 붙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연암 박지원의 경우는 청나라 황제의 피서별궁이 있는 열하까지 여행하였기 때문에 그 표제를 『열하일기』라고 붙인 것이다.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1737~1805)은 18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실학자이며 문인이었다. 그는 당시 대부분의 유학자들과 달리 민중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利用厚生의 현실적 삶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형식의 글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열하일기』에는 이와 같은 연암의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연암은 당시 중원을 지배하고 있는 청조를 객관적 시각으로 인식하고자 하였다. 그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발달한 청의 문물과 중국인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삶의 자세를 배워 와서 우리 조선 백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연암의 이러한 자세는 제시된 사료인 「도강록」,「일신수필」에도 피력되어 있다.
연암이 중국을 여행한 때(1780)는 명나라가 멸망(1644)하고 청조가 중원의 주인으로 자리 잡은 지 한 세기도 훨씬 지난 18세기 후반이다. 이때 청조는 표면적으로는 태평성대처럼 보였으나, 내면적으로는 철저한 탄압정책이 실시되고 있을 때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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