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고구려 수당항쟁기
- 최초 등록일
- 2004.12.16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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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 수당항쟁기를 전쟁을 통해 바라봄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수양제의 2차침공
①인해전술
②공성전으로의 변화
③고구려 결사대
④살수대첩
ⅱ. 당태종의 등장
①태평성대와 교류
②새로운 전술의 변화
ⅲ. 전쟁의 시작
①당군의 전략
②안시성 싸움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수양제의 2차침공
통일 중국과 고구려와의 첫 대결은 수의 통일 10년 만인 598년에 벌어졌다. 이후 약 20년 동안 수는 네 번이나 고구려를 침공했다. 그 중에서도 백미(白眉)는 수양제가 200만 대군을 동원한 612년의 제 2차침공이라 생각되기에 이부터 서술하려 한다.
① 인해전술(人海戰術)
612년 탁군에 집결한 수의 공격군은 113만 3천 8백명. 전군을 24군으로 편성했는데 1군은 기병 40대와 보병 880대로 구성되었다. 1대가 100명이었으므로 1군에 가봉 4천명, 보병 9천명이었다. 이렇게 하면 전투병은 28만 8천 명밖에 되지 않지만, 군마다 따로 치중대(致衆隊(수송대))가 전투병 수만큼 편성되었다. 그 외에 중간에 보급기지도 두어야 하고 이를 위한 경비병과 병참부대(兵站部隊)도 있어야 하므로 총 113만이 된 것이다. 기병(騎兵)은 10대를 1단으로 하고, 보병은 20대를 1단으로 하여 군마다 4단을 두었는데 단마다 갑주와 깃발, 복장의 색깔이 달랐다. 이 엄청난 군대가 한 번에 출발할 수 없으므로 하루에 1군씩 출발시키되 군마다 40리씩 간격을 두게 했더니 전군의 길이는 960리에 뻗쳤다. 이와는 별도로 수 양제를 호위하는 어영군(御營軍) 6군이 또 있었는데, 이들의 행렬만 80리였다고 한다. 천리면 딱 경부고속도로 길이니, 이원정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이런 엄청난 대군을 동원할 때 숫자에 걸 맞는 작전 계획이 있었다. 성을 하나하나 돌파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통과해 버리는 작전이었다. 그 방법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세계를 통틀어서 오직 중국만이 할 수 있는 작전, 즉 인해전술(人海戰術)이었다.
참고 자료
『전쟁과 역사』, 임용한, 혜안출판, 2001
『역사 스페셜』, KBS역사스페셜, 효형출판, 2000
『한민족 전쟁사 총론』, 박삼석, 나남출판, 1997
『무기와 화약』 ,김기웅,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2000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2』김선민 역, 신서원, 1999
『한국사 이야기 3-삼국의 세력다툼과 중국과의 전쟁』 이이화, 한길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