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4.12.03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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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세종이 지었던 수강궁 터에 세워진 창경궁은 임진왜란 후 창덕궁과 함께 중건되어 그 쓰임새가 더욱 커진 이궁(離宮)이다.
창경궁은 순조 30년(1830)의 큰불로 4년 후 복구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이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창경궁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숙종 때 장희빈과 그 일족을 처형한 사건이, 영조 때 사도세자의 죽음 등이 모두 이곳에서 일어났다.
창경궁은 순종 3년(1909) 일제가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전각을 헐어 박물관 등을 세운 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면서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다가, 1983년 창경궁으로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창경궁의 궁제와 배치*
궁궐을 구성하는 여러 공간 영역은 성격면에서 정확하게 경계지어 나누기는 힘들지만, 크게 그 기능과 역할에 따라 몇 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국왕이 국가적인 공식행사를 치르던 법전과 공식적인 정무업무를 보던 편전 등의 외전 영역과 왕과 왕비, 왕실 가족들의 일상 생활과 기타 생활주거공간으로 구성된 내전 영역, 그리고 세자가 머물면서 차기를 준비하며 국정수업을 쌓던 동궁 영역, 궁궐 안에 설치된 관서들로서 궐내각사 영역, 그리고 국정을 구상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연회를 베풀던 원유 영역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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