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역사속 숙명의 라이벌 흥선대원군vs명성황후
- 최초 등록일
- 2004.11.26
- 최종 저작일
- 2004.07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A+받은 레포트입니다..
후회안하실겁니다..
많은 도움 되시길..
목차
서론
본론
1. 흥선대원군vs명성황후
1)흥선대원군
2)명성황후
2. 쇄국정책vs개화정책
1)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2)명성황후와 개화파의 개방. 개화 정책
① 개화정책의 내용
②근대화를 위한 개화정책의 의의
3. 두 라이벌에 대한 평가
1) 흥선대원군
①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대한 비판
②메이지 유신을 통한 대원군의 쇄국정책의 비판
2) 명성황후
①기존에 있어왔던 부정적 평가
②명성황후에 대한 나의 재평가
결론
본문내용
서론
역사속에는 많은 숙명적 라이벌이 존재한다. 후삼국 시대의 왕권과 견훤, 고려시대 새로운개혁을 시도했던 묘청과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던 김부식, 처음에는 동지로 출발했으나 개혁에 다른 생각 때문에 라이벌이 되었던 중종과 조광조, 단독정부의 수립과 '임정법통론'에 의한 정부수립을 주장하던 이승만과 김구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의 경쟁을 살펴보면 어느것하나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우기 위한 것은 없다. 국가의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권력을 둘러싸고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나는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라이벌로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를 들겠다. 우리나라가 서양의 통상요구의 압력과 무력적 침략에 직면하여 개항과 쇄국의 기로에 있을 때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각각 다른 대외 정책을 취하여 전근대적 봉건국가로부터 벗어나서 근대국가로 도약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세기 후반 국내적으로는 세도 정치의 폐단으로 인해 국가 기강이 해이해져 각 지역에서 민란이 발발하였고, 국외적으로는 서양의 통상요구로 인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참고 자료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frm=nt)
엠파스 백과사전 (http://alldic.empas.com/)
http://www.koreanhistory.org/webzin/05/05-10/html
http://www.hankooki.com/200110/np20001100421191oh010.htm
누드교과서 국사 (상),(하)/이투스
1880년대 초기의 개화정책에 관한연구/이영철
새롭게읽는 명성황후이야기/유형종
한국사를 바꾼여인들/책이있는 마을. 2002. 황원갑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치에 대한 일연구/인하대학교. 1987. 황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