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족주의 사학] 안재홍과 손진태
- 최초 등록일
- 2004.11.13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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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재홍 손진태에 대한 소개와 참고문헌입니다.
목차
소개와 참고문헌
본문내용
안재홍은 두릉리 출생이며, 비교적 중농인 집에서 태어난 그는 7세때 포승면 홍원리 박재봉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1907년 고덕면 율포리의 진홍의숙에 입학하여 신문학을 배웠으며, 수원의 기독교 계열 학교에 진학한 후 서울의 황성 기독교 청년회(YMCA 전신)의 중학부에 진학하였다.
이 때부터 애국 계몽 운동에 눈을 뜬 그는 1910년 한일 합방이 되자 미국으로 떠나고자 하였으나 이상재와 부친의 권유로 동경에 유학했다.
1년간 아오야마 학원에서 어학을 공부하고, 1911년 9월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하여 1914년 졸업하였다.
조선인 유학생 학우회를 조직하여, 언론과 독립운동에 가담하던 그는 1913년 중국을 여행하면서 박은신․신규식․신채호 등의 독립 운동가를 만났으며, 당시 이들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란 조직에 가입하였다.
1915년 귀국하고 서울 경성 사립 중앙 학교 학감으로 제직하며 학생들에게 독립 사상을 고취시키다가 일경의 탄압으로 사임하고 1917년 중앙 YMCA교육부 간사로 근무하였으며, 본개 기독교인 그가 그 해에 대종교에 가입함으로써 독립 운동에 점차 정진하게 되었다.
1919년 독립 만세 운동이 시작되자 그의 생가인 고덕면 두릉리 일대는 일경의 요시찰 지역이 되었고, 그로 인하여 주민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빚어졌으며, 안재홍․이병헌을 축으로 하는 독립 운동의 맥은 고덕․양감․우정면 등에 활발하였다고 본다. 대종교의 지방 지도에 연계시킨 일경의 안재홍․이병헌․ 등의 감사는 두 분의 영향력을 말해 주는 것으로 전기한 만세 사건 일지를 보면 잘 나타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