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장보고의 피살과 청해진의 몰락
- 최초 등록일
- 2004.11.10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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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보고의 피살과 청해진의 몰락에 대해 사료를 바탕으로 알아본 글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신당기 등 여러 사료가 인용되고 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장보고는 국방과 무역에 힘쓰는데 그치지 않고, 왕가의 요청에 의하여 왕위계승을 둘러싼 왕실의 싸움에 관여하게 되었다. 『삼국사기』본기 및 열전을 보면, 흥덕왕이 재위한 지 11년(836) 12월에 돌아가매 그의 종제(從弟) 균정(均貞)과 종제(從弟) 헌정(憲貞)의 아들인 제륭(悌隆, 후의 僖康王)이 각기 임금이 되려고 했다. 이때에 시중 김명(金明, 후의 閔哀王)과 아찬 이홍(利弘)·배훤백(裵萱伯) 등은 제륭을 받들고, 아찬 우징(祐徵)은 조카 예징(禮徵)과 김양(金陽)과 더불어 그의 아버지 균정을 받들어, 동시에 대궐에 들어가 싸우다가 김양은 화살에 맞아 우징과 함께 도망가고 균정은 해를 입게 되는데, 그 후 제륭이 즉위하니 그가 희강왕이다. 우징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처자와 함께 달아나 배를 타고 청해진 장보고에게로 가서 의지했다.
참고 자료
崔珉子, 『世界人 張保皐와 地球村 經營』, 범한, 2003.
최광식,정운용,최근식,윤재운, 『해상왕 장보고 그는 누구인가?』,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