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공부하는 학생] 만해 한용운
- 최초 등록일
- 2004.10.23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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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한용운의 애국사상
생애
한용운의 「조선 독립의 서」
3. 나오는 말
본문내용
2. 한용운의 애국사상
생애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정옥으로 승려가 되기 전에는 유천이라고 하였습니다. 14세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홍성읍 학계리에 사는 전영주의 셋째 딸 정숙과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2년이 되는 16세에 돌연 집을 떠나 성락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이듬해인 1896년에 동학군에 가담하고, 1899년 블라디보스또끄로 건너갔으나 박해를 받고 곧 돌아와 정처없이 전전하게 되었다.
1905년에는 백담사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그는 백담사에서 견성득도를 하였고, 이름을 고쳐 법명을 용운이라 하고 호를 만해라 하였다. 1909년부터 1910년까지 강원도 표훈사(表訓寺) 불교 강사(講師)에 취임하는데, 여기서 승려 취처(娶妻) 문제에 관한 건의서를 두 차례 당국에 제출하여 불교계에 물의를 일으킨『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백담사에서 탈고했다. 한일합방이 되고 난 후, 1911년부터 만주로 건너가 독립지사들과 만나 운동의 방향을 논의하는 등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1914년엔 불교를 알리기 위해 팔만 대장경을 간추린 『불교대전(佛敎大典)』을 범어사에서 발행하였고, 조선불교회 회장이 되었다. 1918년 9월 월간지 『유심(惟心)』을 창간하면서부터는 문학창작에 힘을 기울여 「조선청년과 수양」「고통과 쾌락」「고학생」「천연(遷延)의 해(害)」「훼예(毁譽)」「무용(無用)의 영심(榮心)」등 많은 글을 『유심(惟心)』에 발표했다.
참고 자료
조재복, 「만해의 애국사상에 관한 연구」, 수원대논문집 37, 1999, PP. 53~70.
고명수,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 나타난 만해의 독립사상」
- http://www.budreview.com/html/8/8-sp-ko-myung-su.htm
http://www.changbi.com/info/auth/manhae_author.htm
http://hunii70.com.ne.kr/epis/yongoun.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