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역사] 갑오개혁의 내용과 문제점
- 최초 등록일
- 2004.10.12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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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갑오개혁의 배경
2. 갑오개혁의 주체
3. 갑오개혁의 내용
1)반청독립의 실현
2)내정개혁
4. 갑오개혁의 문제점
1)민족적측면
2)근대적측면
본문내용
한반도 근대화의 중요한 기점의 하나로 말해지기도 하는 갑오개혁의 직접적 배경은, 안으로는 갑오농민군의 개혁 요구에 있었고 밖으로는 일본의 내정개혁 강요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측의 강요는 조선의 내정개혁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행정 및 사회경제 체제를 일본의 침략에 알맞게 개편하고 청나라와의 이권(利權)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얻기 위한 수단이며, 전쟁 도발의 구실을 만든 데 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해 갑오농민군의 요구는 문호개방 이전부터 줄기차게 이어져온 민중의 개혁의지가 집약되고 강화된 것이었다.
조선 사회의 정치 ․ 경제 ․ 사회 체제에 대해 비교적 체계적인 개혁안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상가들은 실학자들이었다. 그들이 비로 근대적 정치기구나 경제체제를 전망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해도 왕실재정과 정부재정의 분리, 농민적 토지소유를 위한 토지제도의 개선 및 개혁, 신분제 타파 등 갑오개혁에서 이루어진 각종 개혁방안은 물론, 그밖에 토지문제와 같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실학자들의 개혁요구는 갑신정변의 정강정책에도 어느 정도 계승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적 ․ 역사적 요구이기도 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여 개화정책은 다시 주춤거렸지만 10년 후에 폭발한 갑오농민군의 개혁 요구는 어느 경우보다 강력한 것이었다. 농민군의 개혁요구는 노비문서의 소각, 천인의 대우 개선, 지벌(地閥) 타파에 의한 인재등용 등에서 실학이나 갑신정변의 개혁안보다 한층 더 적극화했고, 토지문제에서도 개화당보다 실학자의 개혁안을 이어받아 농민적 소유를 주장했다가 결국 균등한 경영, 즉 분작(分作)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개항 전 민란(民亂)때부터 농민들이 거듭 주장해오던 삼정(三政)의 문란에 대한 시정 요구가 강력히 표명되었다. 갑신정변 때 개화당 정강에서는 각 지방의 환곡을 영구히 면제할 것이라는 데 그쳤으나 갑오농민군의 요구에서는 무명잡세(無名雜稅)의 폐지, 공사채(公私債)의 일체 무효화 등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보면 갑오농민군의 폐정개혁안(弊政改革案)은 실학자와 민란 농민의 개혁요구, 그리고 갑신정변 세력의 개혁정책 등이 집약되고, 그것이 갑오농민군에 의해 한층 강화된 것이었다. 그것은 역사발전과 함께 당연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었다. 이 때문에 농민군의 요구에 쫓겨 단행한 갑오개혁도 당연히 멀리는 실학자에서부터 민란농민․개화당․갑오농민군의 개혁요구를 근거로 하여 실시될 수밖에 없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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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역사』, 역사비평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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