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 정권의 경제적 실패
- 최초 등록일
- 2004.08.17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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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8년간에 걸친 전쟁의 결과 중국 국토는 황폐해졌다. 농업과 경공업 생산력도 전쟁 전보다 훨씬 떨어졌고 교통통신망도 군데군데 끊어졌다. 국민정부는 전쟁 중 외국원조와 무역통제로 획득한 수수료 수입 등으로 비축된 거액의 외국환 준비고를 이용해 외환시장 개방과 무역자유화정책을 실시해 경제재건을 도모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외국상품의 대량 수입으로 국내 생산력의 회복이 더뎌지고 수출도 줄어 든 것이 이유였다. 1946넌 2월 25일 국민정부는 외환시장의 개방과 무역자유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참했다. 국내의 부흥수요를 예상하여 실세보다 다소 높게 설정된 외환 효율에 자극을 받아 대량의 상품이 수입되었다. 수입품의 증대는 국내생산력 회복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방해했다. 1947년 6월이 되어서도 국내의 생산력 수준은 전쟁 전 최고수준의 35.1%박에 도달하지 못했다. 수출은 국내생산에 여력이 없고 외환 환율도 장애요인이 되어 급속히 떨어져갔다. 당연히 거액의 무역적자가 발생하여 국민정부의 외환준비는 자유화 후 5개월 반만에 1억 5.500만 달러나 감소했다. 분명히 경제의 자유화정책은 너무 성급했던 것이다. 많은 상공업자로부터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나왔으며 1946년 11월의 중.미통상조약도 미국 제품의 중국 유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국민정부는 경제자유화정책을 단념하고 1947년 2월 27일 외환매매 금지와 일상필수품에 대한 배급제도의 부활 등을 주안으로 하는 ‘경제긴급조치방안’을 공포함으로써 통제경제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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