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인문] 한글 창제의 정치적,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의의
- 최초 등록일
- 2004.06.20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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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음성언어로 국어를 사용하면서도 문자언어는 양반층의 한문과 중인층의 이두로 대별되는 이원체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어를 발음대로 표기하는 훈민정음이 새로운 문자로 창제되어 문자생활에 민(民)의 글로서 이른바 언문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훈민정음은 처음부터 백성을 위한 글인 만큼 배우기 어렵지 않았고, 따라서 주로 여성과 일반 백성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특히 불가의 불경언해, 사대부의 가사와 시조, 한서(漢書)의 주해 및 번역, 전교(傳敎)와 편지 등이 그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순언문 시가와 소설이 유행하면서 훈민정음은 백성과 여성층에 있어 불가결의 글이 되었다. 한편 조선 후기에 일어난 실학운동은 정음문학(正音文學)의 융성과 함께 정음연구를 근세적 문자음운학(文字音韻學)으로 부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실학파의 저술로서 정음에 관한 논술이 빠져서는 안 될 정도로 확산되었고, 그 업적은 어휘집뿐 아니라 방언과 속담의 수집 및 어원 탐구 등 여러 방면에 걸쳤다. 홍명복(洪命福)의 《방언집석(方言集釋)》, 이의봉(李義鳳)의 《고금석림(古今釋林)》 같은 것은 동양어사전인 동시에 기초어휘집으로서 가치있으며, 특히 유희(柳僖)의 《물명고(物名考)》에는 주석 곳곳에 1600여 개의 희귀한 우리말 어휘 기록이 전한다. 갑오개혁이 추진된 1894년 11월 칙령 제 1 호 공문식(公文式)을 공포하여 종전의 한문 대신 국문을 쓰도록 함으로써,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450년 만에 언문이 공식적인 국자(國字)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 한글은 독창성과 기호 배합의 효율성면에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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