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품제] 신라의 골품제도
- 최초 등록일
- 2004.06.12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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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골품제도의 신분
신라의 관등제
소멸 원인
(문서내 구분은 없습니다.)
본문내용
신라 1000년의 역사 속에서 신라인들의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의 범위를 결정했던 폐쇄적인 신분제도인 골품제도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의 논문들이 지금까지 발표되었다. 그 동안 정설에 이르게 된 연구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 있어 견해가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의 말이 맞는지 매우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하지만 학문이란 다양한 의견이 있을 때 발전하는 것이며 수많은 논쟁 속에서 진정으로 골품제가 무엇이며 어떠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하여 신라인들의 생활을 알 수 있고 신라인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고대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역사의 진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의 구조적인 틀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졌기에 신라사에 대한 해명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골품제는 신라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면에 걸쳐 신라인의 활동을 규제했기에 신라사 해명의 열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골품제는 신라의 독특한 신분제도로서 성골, 진골의 골신분과 6두품에서 1두품까지의 두품신분으로 이루어진 8계층의 신분제였다. 그런데 후에 성골이 소멸되고 3두품, 2두품, 1두품은 평인 신분으로 되어 5계층으로 짜여지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위와 같은 골품제는 왕경인의 신분제로 편성되어 있었고 지방민의 신분제는 별도로 짜여져 있었다.
골품제라는 용어를 왕경인만을 칭하는 협의로 사용하기보다 신라인 전체를 지칭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라인들은 이 같은 여러 신분 중 해당 신분에 각기 속하여 있었고 그 신분에 따른 정치적, 사회적 특권과 의무가 주어져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