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여운형과 그의 행동에 나타난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4.06.12
- 최종 저작일
- 2004.06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깔끔합니다.
목차
1. 몽양 여운형
2.몽양의 풍채와 성격
3.독립운동가로서의 여운형
4. 중국혁명의 일선에 나선 여운형
5. 고국에서의 여운형
6. 해방후의 정국과 여운형
7. 여운형과 소련, 그리고 공산당과의 관계
8. 공산당의 변화와 여운형
9. 해방후의 미.소 관계
10. 맺는 말
본문내용
1. 몽양 여운형
몽양 여운형(1885-1947)은 한국의 근현대사가 낳은 호걸중의 한 사람이다. 여운형은 여러 면에서 호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지용과 기개가 남다르게 뛰어나서 독립운동의 선상에서 빛나는 공훈을 세웠고 그의 풍모와 인품은 많은 외국사람들을 압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조선민족에 대한 존경심을 갖도록 했다. 1929년 상해에서 일제의 경찰에게 체포되어 귀국한 그는 3년의 옥고를 치르고 난 후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사람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여운형은 해방을 맞이한 그날, 해방조선의 제1인자로 등장하여 기염을 올렸는데 궁극적으로 그가 주장했던 민족의 단합과 자주민주 노선은 실현되지 않았고 해방된지 2년도 되기 전에 괴한에 의해 피살되어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쳐야 했다.
2.몽양의 풍채와 성격
여운형은 풍채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였다. 어떤 잡지기자는 여운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연단에 올라선 여운형씨는 첫째 그 풍채가 온 청중의 신임을 모았다. 육척장구의 서양인에서 보는 것 같은 완강한 체구, 게다가 카이젤 수염, 커다란 눈, 좌우로 활활 뻗어나간 귀, 그 위에 시원스럽게 벗어 오른 면적 넓은 이마. 초 인상에 그야말로 위장부라는 든든한 감명을 던져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