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의상] 속옷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4.06.07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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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체미학' 이라는 과목에서 인체미를 이용한 예를 찾아 쓰는 레포트로 제출한 것입니다. A+ 받은 레포트 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그림은 첨가되지 않았습니다.)
목차
1. 속옷의 목적
2. 속옷의 기능
3. 속옷의 역사
1)고대
2)크리트
3)그리스
4)로마
5)중세
6)근세-르네상스, 로코코,바로크
7)근대-엠파이어, 낭만주의, 크리노린
8)현대
4. 결론
본문내용
3.속옷의 역사
1. 고대
1) 이집트(Egypt)
이집트는 기후가 따뜻하고 건조하여 개방적인 의상형태의 발달을 가져왔으며 아열대성 기후에 적응 할 수 있도록 인체의 일부에 걸치거나 헐렁하게 둘러입는 의상을 입게 되었다. (그림 1, 2, 3) 착용자의 부와 권위를 의상의 형태로 나타내었던 이집트의 경우 남녀의 의상 형태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었다. 남녀 의상 모두 린넨을 사용하였으며 남성복이 활동적인데 비해 여성복은 극히 비활동적이어서 몸에 꼭 끼며 유방을 거의 드러내거나 한 두개의 끈이 달린 시스 스커트(sheath-skirt)를 입다가 후에 직조법의 발달로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칼라시리스(Kalasiris)를 착용하였다. (그림 4, 5, 6)이 당시 의상 성격은 속옷 또는 겉옷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속옷도 겉옷의 발생요인과 꼭 같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때의 속옷이란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속옷의 개념과는 다르다.
2) 크리트 (Creta)
B.C 3000부터 B.C 1100 년경까지 계속된 크레타 문명은 종교에서 왕신이 어머니이거나 다산적인 여성으로서 여성중심의 사회였다. 크리트 의상은 종교의식에 강한 영향을 받았는데 뱀을 든 여신의 경우는 화려하게 장식된 상의를 앞을 열어놓아 유방과 배를 노출하였는데 가슴과 배의 노출은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였다고 보아진다. 생산과 다신의 구현체인 여성의 나체는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다산숭배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허리가 굵어지기 않게 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콜셋-벨트(Corset-belt)를 착용하였는데 (그림 7) 남녀 모두 사용하였다. 가죽이나 금속으로 만들었으며 금속으로 만든 벨트에는 장미꽃이나 기하학적인 무늬를 넣어서 만든 것도 있었다. 피부와의 접촉으로 상처가 나지 않도록 벨트의 끝을 둥글게 하였으며 앞에서 겉으로 매어 유방을 밑에서 부터 강조하였다. 이 시기의 콜셋을 오늘날 콜셋의 원조로 보며 이 사실은 B.C 1500년경의 상아로된 조각에서 뒷받침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