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근세사] 명청대 국가권력과 신사
- 최초 등록일
- 2004.05.18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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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청대시대에 걸쳐서 중국은 사회·경제적으로 규모가 방대하고 다양해졌다. 그러나 관인의 수는 항상 25,000 내외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방행정이나 향촌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치행정(官治行政)에 대한 보조수단이 필요하였다. 명·청 양조는 그러한 보조수단으로 신사층을 택하였다. 그리고 평민의 입장에서도 국가권력의 지방통치에서 생기는 공백부분을 신사의 사회적 지배력에 의할 수밖에 없었다. 즉, 국가권력측과 평민의 공통의 기대하에 신사가 시대부적인 공의식에 의해서 국가권력의 보좌역의 역할을 연출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신사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위로는 관부(官府)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동시에, 향촌사회에 대해서는 사대부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지배력을 유지·확대시키고, 사적으로는 개인의 이익도 보호할 뿐 아니라, 평소 떳떳하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온 그들의 사리추구 행동도 어느 정도 합리화 내지 상쇄시킬 수도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신사는 사적으로는 개인의 사리를 추구하는 행동도 많았다. 그러나 공적으로 보면, 향촌에 대해서는 국가통치의 보좌역으로서,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향촌여론의 대변자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신사는 사회에 대하여 순기능과 역기능, 공의식과 발로와 사리추구라는 공·사의 양면성을 보유한 존재였던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신사층의 형성
1. 학위소지자 - ‘사(士)’의 출현과 계층적 고정화
2. 신사층의 성립 - ‘신(紳)’과 ‘사(士)’의 동류의식 형성
Ⅲ. 명대의 국가권력과 신사
1. 원말·명초 동란기(動亂期)의 지배층과 주원장(朱元璋) 집단
2. 명조(明朝)권력과 신사
3. 신사의 사회경제적 역할
Ⅳ. 청대의 국가권력과 신사
1. 명말·청초의 동란기의 신사와 청군(淸軍)
2. 청조권력과 신사
Ⅴ. 맺음말
본문내용
근대 이전의 중국역사에서 사회의 발전과정에 나타난 기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했던 이면(裏面)에는 각 시대마다 이를 가능케 한 윤활유적인 역할을 한 계층이 있었으니, 송대에는 사대부가, 그리고 명대 이후부터 청말에 이르는 시기에는 신사(紳士)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국가권력으로부터 형식적이고 공식적인 특권을 부여받고 사회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바, 때로는 협조적이고 때로는 반관(反官)적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청시대의 통치형태와 사회구조를 포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선 신사의 다양한 역할과 존재형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명·청대 국가권력과 신사와의 관계를, 그들이 수행했던 정치·사회·경제적 역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그에 앞서 신사의 구성과 동류의식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도 정리하였다.
참고 자료
1. 장중례 저, 김한식 외 공역,『중국의 신사』, 신서원, 1993
2. 서울대학교 동양사연구실 편, 『강좌 중국사 3,4』, 지식산업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