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임진왜란(탄금대전투,행주산성)
- 최초 등록일
- 2004.05.17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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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단한거는 아니지만 한국사의 이해란 수업시간에서
발표수업을 한 내용입니다..~~
목차
1.임진왜란의 배경
2.탄금대전투
3.행주대첩.
4.임진왜란의 결과
본문내용
1.임진왜란의 배경
1.우리나라의 사정
* 오랜 평화로 인해서 국방을 소홀히 하고, 양반의 편당과 정치기강이 해이해져있었음.
* 전체적으로 일본을 얕잡아보는 경향을 가짐.
* 조세제도의 문란으로 민심이 혼란해짐.
* 국제적인 변화에 대처하지 않음.
* 진관체제->제승방략체제
조선의 국방체제는 원래 중앙군(中央軍)과 지방군(地方軍)으로 나뉘어 있었다.
중앙군은 5위(五衛)라 하여 중위(中衛)를 중심으로 전위(前衛), 후위(後衛), 좌위(左衛), 우위(右衛)로 구성되어 5위 도총부(都摠府)가 지휘했다.
그러나 평화의 세월이 계속되면서 중앙군은 유명무실해져 실제 전쟁이 터졌을 때에는 그 존재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에 비해 지방군은 비록 문관 통제하에 병력은 부족했어도 그 존재는 있었고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유지해 왔다.
지방군은 원래 진관제(鎭管制)로 편성되었다. 각 도의 감영이나 전략적인 요충 등 한두 곳에 주진(主鎭)을 설치하고 주진은 도내 중 읍성에 설치된 거진(巨鎭)을 거느린다. 거진은 도의 크기에 따라 적게는 3개(황해도), 많게는 20개(평안도)까지 설치되었다. 거진은 다시 군현마다 설치된 제진(諸鎭)을 거느리게 되어 있었다. 수군 체계도 육군의 진관체계와 같이 했다. 이같이 진관제는 지역 방어, 진지방어 개념으로 요새등에 상주병력을 배치해 두었다가 전쟁이 나면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도록 하는 방어체계였다.
참고 자료
다시쓰는 임진왜란사(조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