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작가론] 성리학의 거두 -이색론
- 최초 등록일
- 2004.04.24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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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본론
1)이색 연보,생애
2)시대적 배경
3)이색의 주요작품
4)문학사상과 작품세계의 특징
5)목은 이색의 성리학
3. 결론
본문내용
고려후기 사회는 내부적으로 권문 세족과 신흥 사대부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고 밖으로는 왜구·홍건적의 침입과 원·명 교체에 따른 대외관계의 변동이 일어났다. 고려 후기에는 왜구의 창궐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고려는 왜구를 막기 위해 일본정부와 외교적 교섭을 벌였으나, 일본정부 자체가 이를 억제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별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이에 국방력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토벌에 나섰는데, 그 토벌전에서 큰 공훈을 세운 장군이 최영(崔瑩)과 이성계였다. 이 때 최무선(崔茂宣)은 중국 상인으로부터 화약 제조 방법을 배워 화포(火砲)를 만들어 왜구를 무찔렀고, 박위(朴衛)는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를 정벌해 그 기세를 꺾었다.
공민왕 때는 또한 대륙으로부터 홍건적의 침입을 받았다. 공민왕이 즉위할 무렵 원나라가 쇠퇴하고, 각지에서 한족(漢族)의 봉기가 일어났다. 홍건적은 그러한 한인 반란군의 하나로, 허베이(河北省) 영평(永平)에서 한산동(韓山童)·유복동(劉福童) 등이 일으켜 북중국에서 원나라 세력을 축출하고 그 세력이 강성했는데, 1359년 원군의 반격을 받은 한 무리가 요동으로 쫓겨와 고려를 침범하였다. 이 때 홍건적은 서경까지 이르렀으나 고려군의 반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 되돌아갔다. 그러나 1361년 홍건적은 다시 침입해 개경이 함락되고, 왕은 안동으로 피난했지만, 정세운(鄭世雲)·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이방실(李芳實) 등이 무찔러 몰아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