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근대사] 조선말기 근대사(3국간섭, 개항이후 정책, 갑신정변 정강 14개조, 집강소 폐정개혁안 12개조)
- 최초 등록일
- 2004.02.02
- 최종 저작일
- 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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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말 조선근대사 자료 입니다. 한국사 자료 입니다.
목차
1번, 3국 간섭의 원인과 결과(독, 불, 러)
2번, 개항이후 정부가 주도한 개화정책[1876~1884; 신문, 신식교육(육영공원, 동문학). 선교사확약]
3번, 개신정변 정강 14개조
4번, 집강소 폐정개혁은 12개조
본문내용
1번, 3국 간섭의 원인과 결과(독, 불, 러)
⇒ [갑신정변, 천진조약, 동학, 청일전쟁, 시모노세끼조약(산둥반도할당), 3국간섭(러시아주도)]
임오군란 이후 민씨정권은 청에 의존하면서 개화파를 압박하였다. 위기에 몰린 개화파는 청불전쟁으로 청의 조선주둔군의 반이 이동한 점과 일본측의 후원을 확인하고,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호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원세개(袁世凱)가 지휘하는 청군의 개입으로 정변은 3일만에 실패로 끝났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은 공사관의 방화와 거류민 희생이 책임을 묻는다는 명목으로 이노우에가 병력을 끌고 서울로 들어와 1885년 1월 9일 김홍집과 갑신정변에 대한 뒤처리 문제로 한성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정변의 실패로 인해 조선에서 그 입지가 불리해진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전권대사로 청에 파견하여 이홍장과 갑신정변을 마무리 짓는 천진조약을 1885년 4월 18일 체결하였다. 천진조약은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주국은 조선에 주군하는 군대를 철수하며 일본국은 공사관의 호위를 위하여 조선에 주재한 병력을 철수한다.
1. 양국은 함께 승낙한다. 조선국왕에게 권하여 병사를 교련하여 치안을 유지할수 있게 하고 또한 제3국의 무관 1명 내지 수명을 선방 고용하여 군사교련을 위임하되 이후 중. 일 양국은 사람을 파견하여 조선에 주재하면서 교련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1. 장래 조선국에 만약 중대하건이 일어나 중, 일 양국 혹은 어떤 한 국가가 파병을 요할 때 응당 그에 앞서 쌍방이 문서로써 통지해야 한다. 그 사건이 진정된 뒤에는 즉시 병력을 전부 철수하며 잔류시키지 못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