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 제주 4.3사건
- 최초 등록일
- 2003.12.22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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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주 4ㆍ3사건은 미군정 아래서 한민족이 안고 있던 모순이 집약되어 나타난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제주 4ㆍ3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상황이 지속되던 시기의 제주도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여건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1920년대부터 제주~대판간 직항로가 개설되어 군대환 등의 경기 여객선이 운항돼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전쟁의 종결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사람들로 인해 제주의 인구가 25% 증가했을 정도이니, 이주 노동자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돌아온 사람들은 일본에서의 힘든 삶 때문에 민족ㆍ사회의식 이 많이 고취되 있었고, 그 중에는 대학 교육 등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광복 직후 건국 준비를 위해 인민 위원회를 만들고, 마을 마다 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자치 활동을 활발히 전개 했다.
당시 제주도 인민 위원회는 항일 운동가들에 의해 좌ㆍ우익의 대립 없이 일을 처리해 나가 큰 호응을 받았고, 미군정과도 마찰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광복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은 곧 무너지기 시작했고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에 의한 300여명의 희생 등은 미군정에 대한 불만을 확산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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