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 독립신문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3.12.11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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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독립신문의 창간
■ 독립신문의 운영
■ 독립신문의 논조
■ 독립신문의 의의
본문내용
독립신문의 창간인인 서재필은 20세의 나이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자 일본을 거쳐 미국에 망명하였다. 망명한지 10년 10개월만에 국내개화파들의 권유로 조선에 돌아온 서재필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필립 제이슨이 되어있었다.
필립 제이슨은 원래 신문을 간행할 목적으로 조선에 온 것은 아니었다. 신문간행은 돌아온지 20여 일 뒤 조선정부의 중추원 고문직을 수락하면서 결정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재필은 귀국한지 3개월만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정부의 지원은 비단 자금뿐만 아니었다. 학부는 각급 학교의 생도들에게 신문을 구독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내부는 각 지방관청에 신문을 구입토록 지시했다. 정부는 발행허가도 내주었는데 이는 우송상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또 정부는 기자들이 마음대로 관청에 들어가서 취재할 수 있는 출입증까지 내주었다. 이러한 지원은 서재필이 자신의 미국 시민권을 이용하여 미국공사를 통해 얻어낸 것이라곤 하지만 정부의 우호적인 태도도 적잖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동파 관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컸다. 정동파의 지원은 일본 외무성의 자금일 지원받아 발간되고 있는 한성신보가 일본의 입장을 편파적으로 옹호하는 기사를 게재하는데 대한 강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독립신문의 창간에 있어서 일본쪽의 강경한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1896년 2월 11일 이른바 아관파천이 일어나 친로파 내각이 구성되어 일본의 영향이 거의 차단되었다. 그리고 박정양을 수반으로 하는 새 내각에 제이슨에 호의를 갖고 있는 인물이 다수 참여하게 되어 창간비용을 지출해주었다. 즉 아관파천과 그에 따른 정동파의 집권이 없었다면 독립신문의 창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