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광개토대왕비
- 최초 등록일
- 2003.12.11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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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본론
1. 발견과정
2. 拓本과 判読
3. 비문의 주요내용
1) 辛卯年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2) 辛卯年
3) 倭에 대한 기사
Ⅲ. 결론
본문내용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의 정확한 명칭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婢)이다. 이 碑石은 好太王의 아들인 長壽王이 선왕의 공적을 기리고 묘지를 지키는 연호들에 대한 규정을 남기기 위해 서기 414년에 능의 동쪽에 건립한 것이다.
이 碑石의 모양은 아래와 위가 넓고 가운데가 좁은 형태다. 높이는 6.39미터, 제3면이 2미터, 제4면이 1.46미터이다. 또한 아랫부분을 받치고 있는 좌단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면, 길이는 3.35미터, 너비는 2.7미터로 불규칙한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좌단의 두께는 고르지 못하여 동남측이 0.16미터, 서북측이 0.63미터이다.
이 비에는 사방으로 비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비문의 글자 총수는 원래 1775자였으나 判讀할 수 없는 글자가 141자이다. 그리고 141자 중 앞뒤 문맥으로 추측 가능한 글자가 9자이므로 현재 132자에 대한 判讀이 불가능하다.
碑文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분은 高句麗 建國과 관련하여 추모(주몽), 유류(유리), 대주류(대무신왕) 등 3대의 왕위 계승에 대한 것과 好太王의 즉위에 대한 내용이다. 둘째 부분은 好太王의 치적을 적은 것으로, 여기에는 백제정벌, 신라구원, 부여정벌 등에 대한 내용들이 씌어 있다. 셋째 부분은 好太王이 생시에 내린 교시에 근거한 묘비와 연호의 규정을 적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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