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시대 4대 사화
- 최초 등록일
- 2003.11.17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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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무오사화
2. 갑자사화
3. 기묘사화
4. 을사사화
5. 나의의견
본문내용
1. 무오사화
사림파의 중앙진출을 보면, 세조 때 중앙집권 · 부국강병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훈구 대신들이 권력 ·재산을 모으자, 성종 때 김종직(金宗直)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 정계로 진출하였다. 3사(三司:司諫院 ·司憲府 ·弘文館)의 언론직(言論職) 및 사관직(史官職)을 차지하면서 훈구 대신의 비행을 폭로 ·규탄하고, 연산군의 향락을 비판하면서 왕권의 전제화를힌 반대하였다. 한편 훈구파는 사림파를 야생귀족(野生貴族)으로 보고, 사림이 붕당을 만들어 정치를 어지럽다고 비난하여 연산군 이후 그 대립이 표면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종직과 유자광은 일찍이 개인감정이 있었고,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성종 때 춘추관(春秋館)의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훈구파 이극돈(李克墩)의 비행과 세조의 찬탈을 사초(史草)에 기록한 일로 김일손과 이극돈 사이에도 반목이 생기게 되었다. 유자광 ·이극돈은 김종직 일파를 증오하여 보복에 착수하였다. 1498년 《성종실록》을 편찬하자, 실록청(實錄廳) 당상관(堂上官)이 된 이극돈은, 김일손이 사초에 삽입한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비방한 것이라 하고, 이를 문제삼아 선비를 싫어하는 연산군에게 고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