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사학, 동양사] 청대사학
- 최초 등록일
- 2003.10.21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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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①전대흔의 이십사고이
②조익의 이십이사차기
③왕명성의 십칠사상각
④명사의 편찬
⑤고금도서 집성
⑥사고전서
본문내용
중국의 역사학은 청대에 들어와 규모가 커지고 내용도 풍부하게되었지만 청의 한족의 학살과 탄압은 중국문화의 파괴와 한족의 반청투쟁을 야기시켰다. 반청운동의 실패후 고염무 황종희 왕부지등은 청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또한 정신적으로 퇴폐하지 않고 저술을 통해 문헌을 정리하여 화이지변을 선전하고 민족사상과 애국정신을 고양하였다. 이들은 민족부흥을 위하여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들은 송명이학심학을 비판하고 공담을 버리게되■ㅓㅅ으며 경세치용의 실학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그들은 역사연구에서 고대사를 인용하여 현재를 구하고 예것을 찾고 오늘을 통해 보자고 제창하였으며 진화론적 관점을 갖고 역사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학사상과 사학방법 사서의 편찬에 새로운 견해가 나타났고 역사서술을 보오나하는 것으로서 표와 지의 역할을 중시하는등 사학에서 상당한 업적이 나타났다. 그러나 청의 전제통치체제의 강화와 문자옥 사건으로 학자들은 청조의 지배하에서는 현실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고 고증학적인 역사학의 방법만을 발전시키게되었다.
고증학은 한학, 반학이라고하며 형성배경은 역사편찬과 사상적 탄압으로 대다수의 학자들이 당대사를 쓰려하지 않고 고서를 읽고 정리하는 고증학에 몰두했고 청의 안정적 통치국면ㅅ과 경제의 번영은 학자들에게 계통적으로 전적을 정리하는데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도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