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구비문학의 활기와 긴장
- 최초 등록일
- 2003.09.20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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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민속예술의 발전
(2) 판소리
(3) 신재효(1812-1884)
(4) 허두가 또는 단가
(5) 민요 와 설화
(6) 구비문학의 현대적 계승
본문내용
(1) 민속예술의 발전
구비문학은 어느 시기의 문학에서도 그 나름대로 중요한 구실을 해왔지만, 1860년대에 이르러서 전에 볼 수 업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중세의 청산이 가까워오면서 한문학 담당층은 위엄을 잃었으며, 국문문학은 근대민족문학으로 자라나기 위해서 규범화된 격식을 버리고 구비문학과 제휴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와 같은 일들의 계기는 대원군 집권기 동안에 이루어졌다. 대원군은 안민영, 신재효등과 밀착되어, 하층예술이 크게 진작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사업은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각종 장인, 수많은 일꾼들로 인해 민속예술의 위력을 상층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경복궁의 낙성식에서 큰 활약을 한 인물이 신재효이다. 이전부터 대원군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신재효는 경복궁 낙성식에서 <명당축원가>(明當祝願歌), <성조가>(成造歌), <방아타령>으맂어, 자기 제자인 여류광대 진채선으로 하여금 부르게 하였다. <명당축원가>와 <성조가>는 격에 맞추어 부른 노래지만, <방아타령>은 민요에서 전용한, 음담패설로 이루어진 것으로 왕궁낙성 축하행사에서 그런 노래가 불려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대원군이 편 시책은 대부분 대원군의 실각과 더불어 역전되었지만, 민속예술의 발전은 위축되지 않았다. 이것은 조정의 볍령으로 이루어진 현상이 아니고, 개인적인 취향이 시대적인 요구와 합치되어 민속예술이 활성되는 계기는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