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 최초 등록일
- 2018.11.27
- 최종 저작일
-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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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87년이라는 년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나는 과거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사건을 생각해보라면, 1987년 있었던 6월 민주항쟁을 꼽을 것이다. 그 6월은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가?
6월항쟁은 1987년 6월10일부터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6월 민주항쟁 6•10민주항쟁, 6월 민주화 운동, 6월 민중항쟁 등으로 불린다.
6월 민주항쟁의 배경과 과정은 이렇다.
먼저 배경으로 1987년 10•26사건으로 17년간 독재정치를 펼치던 제 4공화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하고, 새로 취임한 대통령 최규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전두환 등을 비롯한 신군부가 군사반란,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 내 실권을 장악하고 이후 전두환은 최규하를 로봇처럼 조종했다. 이후 광주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시위규모는 곧바로 커졌다. 하지만 신군부는 이를 무력으로 유혈 진압하였다. 이 사건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라 한다. 이후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시민들을 분노케 하여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게 된 대표적인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 추진 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받고 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 연행한 것이었다. 취조실로 박종철을 연행해간 보안 당국은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정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였고, 박종철은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하였다. 당황한 경찰들은 의사를 불러 검진했지만 의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박종철은 숨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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