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과 김구 암살 사건
- 최초 등록일
- 2018.11.08
- 최종 저작일
-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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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1) 경교장
2) 김구의 생애와 배경
3) 김구 암살 사건의 과정
4) 암살 사건의 배후
5) 암살의 진상
3. 결론
본문내용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역사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 인물인 백범 김구의 가장 유명한 명언이다. 이렇게 독립운동에 전념하고 자주독립을 외쳤던 그가 암살범의 총알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한국근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이다. 이번 과제에서 경교장을 선택한 것은 암살 사건에 대한 사실과 의혹, 궁금증을 풀기 위함이다.
1. 경교장
경교장은 2001년 4월 6일 서울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6월 13일에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에 위치해 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하였던 역사적 장소이다.
1938년에 광산 갑부이자 친일파인 최창학(崔昌學)이 건축면적 396.69㎡, 연면적 945.45㎡(지하1층, 지상2층)규모로 지었다. 1930년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경교장의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다. 8·15 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건물은 단아한 2층 양관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다우며, 1층의 좌우 창을 원형으로 돌출시켰고, 그 상부를 의장의 중심체로 하였다. 현관 2층부에는 6개의 붙임 원주를 사용하여 5개의 들임 아치창을 냈다.
김구가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집무실에서 안두희(安斗熙)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다시 타이완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참고 자료
백범 기념관 http://www.kimkoo.pe.kr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http://www.kimkoo.or.kr
문화재청 www.cha.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국가보훈처 http://www.mpva.go.kr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첩보) http://www.culturecontent.com
한국콘텐츠진흥원 http://www.kocca.kr
위키백과 www.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