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 사립학교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 최초 등록일
- 2018.06.13
- 최종 저작일
-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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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 원더 ’라는 영화가 있다. ‘ 어기 ’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안면기형으로 태어나 남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로 인해 27번의 성형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또래아이의 눈에는 이상해보이고 흉측한 외모로 인해 수많은 따돌림과 비난을 받지만 가족들과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와 지원으로 인해 극복해나가 위대한 용기 상을 받으며 졸업을 하는 이야기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 과연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서 현 시스템에서, 어기와 같은 아이가 다른 일반인들과 섞여 수업을 받고 아무 탈 없이 저렇게 건강하고 밝게 위대한 용기 상까지 받으며 순탄하게 졸업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필자는 아마 거의 불가능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얼마 전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 문제와 관련해 인근 학부모들이 대거 반발하여 장애우 부모들과 팽팽히 대립되어 맞서있던 뉴스를 봤다. 대다수의 장애아들은 근처에 공립학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인 부모들의 반발 때문에 다니지 못하고, 1시간~2시간 거리의 특수학교를 통학한다고 한다.
<중 략>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당시의 조선사회에 신교육의 이념을 깊이 심어주고, 근대학교의 터를 잡아 준 것은 1876년 개항 이래 이 나라를 찾아온 미국 선교사들이었다. 개신교의 전래는 1832년 독일계 네덜란드 선교사 구츨라프가 전도할 목적으로 입국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신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된 것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부터이다. 알렌 부부가 의사의 자격으로 입국하고, 그 다음해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선교사로 내한하여 활동하는 데서 시작된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교적인 전통사상이 지배적이어서 기독교 선교사업이 수용되는 것은 어려웠었다. 이것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미국 감리교 선교사 맥크레이가 1884년 6월에 고종의 윤허를 받은 것이 선교사업이 아니라, 교육과 의료사업이었다는 사실로서도 짐작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우리나라 교육사의 특징 (9) - 기독교계 학교, 민간인 사학, 안창호의 교육사상
(https://blog.naver.com/tntbyj/221028184812)
이주한, 교육의 역사와 철학의 탐구, 서울 : 창지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