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문학의 문학사적 의의
- 최초 등록일
- 2018.03.03
- 최종 저작일
-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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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작가의 생애
2. 작품별 감상
1) 「남궁선생전」
2) 「장산인전」
3) 「장생전」
4) 「손곡산인전」
5) 「엄처사전」
6) 「홍길동전」
3. 허균의 문학사적 의의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허균은 최초의 국문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의 저자로 우리 고전문학, 특히 소설문학사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이다. 허균은 철저하게 신분에 의해 삶이 결정되었던 시대에 문장가로 널리 이름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살아갔으면서도, 보장되어 있던 안정된 삶을 스스로 거부하였다. 그는 당대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신분제도에 대해 당대의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비판하였으며 그의 논설 「호민론」과 「유재론」을 통해 그러한 생각을 드러내는 일을 꺼리지 않았다. 그의 작품 「홍길동전」이 그의 어떠한 문집에도 실리지 않았으나 저자를 허균이라 추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본인의 삶만큼이나 개성 있고 문학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 「홍길동전」을 비롯하여 그의 「전」문학작품 전반을 간략하게 돌아보고 감상하며, 그의 순탄하지 않았던 생애 역시 함께 돌아보고자 하였다.
Ⅱ. 본론
1. 작가의 생애
허균(許筠, 1569~1618)의 자는 단보이며 호는 교산·학산·성소·성수·성옹·백월거사이고 본관은 양천이다. 아버지인 초당 허엽은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허균은 그의 후처인 김광철의 딸 강릉 김씨 부인에게서 태어난 양천 허씨 문중의 막내아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강릉을 그의 출생지로 추측하기도 하나 당시 허엽이 서울에서 내직으로 벼슬살이를 했던 점으로 보아 서울의 마른내(건천동)를 그의 출생지로 보고 있다. 마른내(건천동)는 현재의 오장동 부근이다. 또한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를 보면 허균이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이 장소에 대해 이순신, 원균, 유성룡, 김종서 등의 명인들이 태어난 곳이라고 적고 있다.
허균은 5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9세에는 시를 지을 정도로 대문장가의 자제다운 면모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무렵에 누이 허난설헌이 김성립에게 출가하였다.
참고 자료
정병헌·이지영,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돌베개, 1998)
김용관,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부글북스, 2009)
이문규, 『허균 문학의 실상과 전망』(새문사, 2005)
정병헌 외, 『고전과 함께 떠나는 문학여행』(태학사, 2009)
우한용·박인기·정병헌·최병우·윤분희, 『한국의 고전문학』(집문당,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