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가면극 - 한국연행문학작품론
- 최초 등록일
- 2017.07.20
- 최종 저작일
-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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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해서가면극
3.1. 봉산탈춤
3.1.1. 민속학적 접근
3.1.2. 연극적 이해
3.1.3. 문학적 해석
3.2. 은율탈춤
3.2.1. 민속학적 접근
3.2.2. 연극적 이해
3.2.3. 문학적 해석
3.3. 강령탈춤
3.2.1. 민속학적 접근
3.2.2. 연극적 이해
3.2.3. 문학적 해석
4.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이전에는 서낭제가면극, 산대놀이가면극을 알아봤다. 다음으로 알아볼 해서탈춤은 황해도 일대의 가면극을 말한다. 2016년 8월 31일 한국문화재재단이 1936년 8월 황해도 사리원 경암산 아래에서 공연된 봉산탈춤을 재연했다. 이는 스웨덴의 조류학자인 스텐 베리만이 당시 16mm 영화 필름으로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이 영상은 또한 민속학자 임석재 선생이 베리만의 후손으로부터 필름 일부를 입수해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현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봉산탈춤 연희 영상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해서탈춤이라고 하면 봉산탈춤이 앞장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해서탈춤이 곧 봉산탈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해서지역의 탈춤을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에 해서탈춤은 봉산탈춤이라는 인식은 지양해야할 것이다. 해서탈춤에는 봉산탈춤을 비롯해 은율탈춤, 강령탈춤이 있다. 각각의 탈춤에 대해서 민속학적, 연극적, 문학적으로 알아보겠다.
2. 해서가면극
해서탈춤은 앞서 말했듯이 황해도 일대의 가면극을 해서(海西)탈춤이라고 부른다. 해서탈춤은 1930년대까지만 해도 봉산·사리원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쪽 지대인 기린·서흥·평산·신계·금천·수안, 북쪽 지대인 황주, 서쪽 지대인 안악·은율·재령·신천·송화, 남쪽 지대인 강령·옹진·연백·해주 등지에서 전승되고 있었다. 황해도에서는 5일장이 서는 거의 모든 장터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가면극을 초청해 놀았다고 한다.
해서탈춤에는 산대놀이와 같이 중 가면이 많고, 다른 지역과 달리 귀면탈에 혹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가면의 크기가 대부분 비슷하고 가면의 재료는 종이를 많이 쓴다. 해서탈춤에서는 가면극이 끝나면 가면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다음 해에는 다시 만들어 사용했다.
3.1. 봉산탈춤
봉산(鳳山)탈춤은 원래 황해도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서 전승되어온 가면극으로서,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1915년 무렵 군청 등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이전하자, 가면극도 함께 사리원으로 옮겨가 전승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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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지경(2003). 『은율탈춤의 춤사위 분석 및 미의식』.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민속원. 『한국전통연희사전』
박전열(2001). 『봉산탈춤』. 서울:화산문화
장혜진(2011). 『조선후기 강령탈춤에 나타난 사회적 기능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조혜림(2005). 『봉산탈춤에 나타난 공동체 의식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