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1차 교육령(배경, 실시, 내용, 결과)
2. 2차 교육령(배경, 실시, 내용, 결과)
3. 3차 교육령(배경, 실시, 내용, 결과)
4. 4차 교육령(배경, 실시, 내용, 결과)
5. 일제강점기하의 교육의 영향 및 토론점
6. 참고문헌
본문내용
1. 1차 교육령
가. 배경
제1차 조선교육령은 1910년 8월22일의 한일 강제 병합 이후, 한국인을 일제에 충량한 국민으로 양성하기 위해 발표되었다. 한국인으로 하여금 일본을 위한 봉사를 수행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인문 사회 관련 내용을 배제하고, 실업 교육 및 기술 분야에 치중된 교육을 강화하였다.
<중 략>
2. 2차 교육령
가. 배경 : 1922~1938 문화정책기
제2차 조선교육령의 실시 배경은 무단통치로 조선을 지배해 온 일제가 그들의 식민지 정책이 성공적인 것으로 인식하였으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지배 방침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은 무단정치를 버리고 소위 문화정치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문화정치란 일본이 그들의 악랄한 식민지 정책을 은폐하고 미화하려는 위장된 용어로, 일종의 기만술책이었다. 일본은 문화정책을 표방함으로써 외형적으로는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을 완화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한 시도가 더욱 강하게 자행되었다.
나. 실시
1922년 2월 사이토 마코토 총독 제2차 조선교육령 공포로 실시되었다.
다. 내용
제2차 조선교육령 시행기는 일제 강점 중반기로써 조선에 대한 일본의 회유정책기 또는 문화통치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19년 8월 새로 부임한 조선총독은 ‘일선융화’라는 이른바 문화정책을 표방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을 표면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3‧1운동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바뀜에 따라 교육정책도 표면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즉, 종래에 저급하게 짜였던 학교체계를 고쳐 일본의 학제와 비슷한 제도로 개편하였으며, 사립학교에 대한 탄압도 완화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교육정책은 조선인의 반일감정을 무마하려는 유화책에 불과할 뿐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동화주의와 차별주의는 변함없었다. 오히려 기만적인 회유정책은 일시동인, 내선일체, 일선융화 등의 정책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조선인에 대한 동화주의 교육을 더욱 본격화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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