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의 꿈과 야망
- 최초 등록일
- 2017.02.15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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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발견과 재발견, 그 우여곡절
2. 진흥왕 활동사의 산 증인
3. 인도 아소카 왕의 벤치마킹, '정복왕'과 '교화왕'
4. 사방 군주를 적극 활용하여 ‘정복왕’으로, <창녕비>
5. 영토 보증서, <북한산비> ․ <마운령비> ․ <황초령비>
6. 교화왕으로 민심까지 사로잡다
본문내용
발견과 재발견, 그 우여곡절
<진흥왕 순수비>. 이를 처음 기록으로 남긴 이는 역사지리학자 한백겸으로 《동국지리지》에서 함흥의 황초령과 이원의 마운령에 각각 진흥왕 순수비가 있음을 확인, 이를 신라가 동옥저를 정복하고 현지에 세운 기념비로 추정한 것이다.
① <마운령비>
; 함남 이원군 동면의 마운령(현재 함흥역사박물과(북한국보107)에 옮겨와 보관)
; 1920년대 최남선이 현지 답사를 하는 우연한 계기, 본격적 조사를 통해 소개
; 화강암으로 비석의 높이는 130.3~138.2cm, 폭은 약 50.3cm이며, 두께는 32~24.5cm
; 화강암으로 높이 146.5cm, 폭은 44.2cm, 두께 30cm. 글자는 10행, 행 당 26자.
; 마멸이 비교적 심하지 않아 대부분의 글자를 판독할 수 있다.
② <황초령비>
; 함경남도 함흥시 하기면 황초령(함흥역사박물관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110호)
; 비문은 13행으로 행 당 약 33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부의 일부와 좌측부의 상부가 깨어져 나가고, 제2석과 제3석을 접합한 부분은 글자가 보이지 않아 판독에 많은 애로점이 있으나, 나머지 글자들은 선명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