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학 명청시대 정리요약
- 최초 등록일
- 2017.01.12
- 최종 저작일
-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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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의대에서 강의하는 의사학 강의 중 명청시기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본 자료는 한의대 시험 족보로 활용되었습니다.
직접 한 글자씩 모두 타이핑한 것이라 양질의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 명청시대
- 원나라가 통일하면서 남북의 의학교류가 이루어졌지만 원나라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 따라서 남북의학 교류가 완료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 명은 한족, 원은 몽고족이 다스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 그에 따른 경제화, 도시화, 질병의 양상이 달라진다.
제1절 역사적 배경과 의학발전의 총맥락
* 역사적인 배경
[명대]
- 초기 : 국가 생산력 증대를 위한 노력(몽고족은 유목민이라 다 풀밭으로 만들자는 생각!-땅 중요시 X), 농산품과 가내수공업의 상품화, 국내외시자의 개척, 강남의 대도시(자본주의 수공업, 인구의 집중)
- 중기 : 16C 이후 유럽의 자본주의 사회 진입, 선교사의 중국 진출(대사관 정도 수준)
- 말기 : 자연과학 분야의 발전(이시진-본초강목, 농업, 지리학, 백과사전, 조선, 제지, 방적 등)
→ 하지만 부패 등으로 인해 청으로 넘어간다
[청대]
- 강건성세(강희제, 건륭제-집권기간이 길다.)
만주에서 천연두가 유행하여 천연두 앓은 사람을 왕위에 앉히지 않고 막내아들을 앉힌다.(강희제)
강남 지역은 지속적으로 발전(인구집중-위생방역이라는 문제가 등장)
사상문화(과거를 통해 선비들을 등용함으로써 한족 지식층을 포섭, 필화사건-청나라 반대하는 사람 탄압, 고전문헌의 고증 풍조-건가학파, 의학의 존경복고의 사상-유학의 풍조, 원래의 내경, 난경으로!)
- 후기
급격한 인구 증가, 빈번한 전란, 의료수요 증가, 전통적인 교육방식으로 인한 사회의료 수준 저하, 서양의학의 진입-19세기 말
[총맥락]
- 금원과 남송의 100여 년간의 대치→남 북의 의학의 격리
- 원대 주단계의 학문이 절강 일대에 성행 후 다시 북으로 퍼지고
북의 이동원의 역수학파는 남으로 퍼짐
- 여전히 논쟁은 이어졌다.
[의학발전의 정체]
- 자음과 온보의 논쟁(이전 시대와 같다)
- 존경복고의 풍조(금원사대가를 배격하고 다시 돌아간다-어찌보면 후퇴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