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에 피어있는 백화 고산 윤선도
- 최초 등록일
- 2016.12.28
- 최종 저작일
-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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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羅
1. 시절을 잘못만난 대나무
2. 다양함을 추구한 준무(俊茂)
3. 국문시의 연금술사
Ⅱ. 結
본문내용
羅
고산 윤선도(尹善道)의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이다. 그는 1687년(선조 20, 丁亥) 6월 21일에 한성부 연화방, 곧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에서 해남(海南) 윤씨(尹氏)의 명문,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낸 유심(惟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종가에 혈통을 이을 이가 없어서 8세(1594, 선조 27, 甲午) 때 큰아버지인 관찰공(觀察公) 유기(惟幾)의 양자로 들어가 해남 윤씨의 대종을 잇게 되었다.
30세에 이이첨의 패정에 상소문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유배와 은거의 삶을 살았던 고산은 그 일생이 잔잔하고 빛나는 물결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같은 가사문학의 대가로 칭해지는 송강 정철과 비교하여도 그는 조명을 받는 큰 인물에 있지 못했다. 벼슬과 직함을 받는다고 해도 금방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학문과 문학에서는 달랐다. 그의 인생이 잘 드러나는 시와 글들이 지금도 전해져 오고 있으며, 그는 예학, 복서와 음양, 원림, 천문, 음악, 풍수지리 등 다양한 학문을 익혔다. 과연 그런 형세가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업적과 글을 통해 그에 대한 평가를 내려 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고미숙, 윤선도 평전, 한겨레출판사, 2013
민족문학사연구소 고전문학분과, 한국고전문학작가론 <‘격변기에 산출된 강호미학의 정점’- 고산윤선도>, 소명출판, 1998
이형대, 어부형상의 시가가적 전개와 세계인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 1998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