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왕세자 교육, 조선왕실의 교육목표, 교육단계, 세자책봉 이전의 교육, 세자책봉 이후의 교육
- 최초 등록일
- 2016.12.05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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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조선왕실의 교육 목표
3. 왕세자의 교육 맛보기
4. 왕세자 교육의 단계
5. 세자 책봉 이전의 교육
가. <잉태전>
나. <복중>
다. <태어난 후>
라. <어린 시절> 갓난아기-유아기-
6. 세자 책봉 이후의 교육
가. 개괄
나. <왕세자의 하루 일과>
다. <탈선시>
라. <조선왕실 교육의 우등생-정조>
마. <기타>
7.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원손(元孫·훗날의 정조)이 네 살 되던 해 영조는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 원손을 불러 앉히고는 글을 읽고, 글자를 써보이게 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불감(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을 막힘없이 외운 원손이 ‘부모’ 두 글자까지 크게 써보이자 영조는 “하늘이 우리나라에 복을 주시려고…” 하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원손이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우던 여섯 살 무렵 영조는 원손의 스승 남유용을 불러 호피(虎皮) 한 벌을 내리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지금 경에게 이것을 주는 것은 원손을 위해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은 엄한 스승이 되라’는 뜻이다. 경을 포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종묘사직을 위한 것이다.”
그의 학문적 역량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물론 타고난 자질도 무시할 수 없다. 실록에는 정조가 어렸을 때부터 붓과 먹을 갖고 놀고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문화군주’ 정조는 태어난 게 아니라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조선왕실 교육목표>
조선의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사상은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여겼다. 왕도정치란 어질고 착한 왕이 선정을 베풀어 위로는 하늘의 복을 받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화답하여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유교사상의 질서 속에서 왕과 왕실은 결코 과도한 물리적 힘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없었다. 왕은 패도적 힘을 행사하는 폭군이 아니라 덕과 학문을 겸비한 스승이자 군주, 이른바 군사(君師)가 될 것을 요청받았다. 이런 분위속에서 조선에는 어느 시대보다도 철저하고 체계적인 왕세자 교육이 이뤄졌다.
3. <왕세자의 교육 맛보기>
왕세자 교육의 핵심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조기교육이자 엘리트교육’이라는 것. 아침 점심 저녁 수업에 야간학습까지 꽉 채워져 있어 학업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도락에 빠졌다가는 양녕대군처럼 폐위를 당하고 마는 스파르타식 훈련과정이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