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영조
- 최초 등록일
- 2003.07.03
- 최종 저작일
- 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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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영조의 즉위
2. 즉위 후의 탕평책
3. 영조의 업적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의 쇠망은 100여년도 안된 일이다. 그러나 현대에 살고있는 우리는 마치 조선왕조가 먼 옛날 얘기처럼 느끼며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요즘 국회에서 자기의 이해당략을 위해 탈당, 입당을 쉽게 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며 영, 정조시대의 당쟁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영조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조선왕조에 대해 관심을 느꼈고 조선왕조 후기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영조시대 탕평책과 그 과정에 정파와 영조사이에서 희생당한 사도세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영조의 즉위
대리청정 문제와 노론 소론 대립
영조 英祖 1694(숙종 20) ~ 1776 (영조 52) 조선 제 21대 왕. 재위 1725~ 1776. 성은 이씨, 이름은 금. 자는 광숙, 호는 양성헌이다.
아버지는 숙종이고, 어머니는 화경숙빈 최씨이다. 비는 서종제의 딸 정성왕후이며, 계비는 김한구의 딸 정순왕후이다.
1699년(숙종 25) 연잉군에 봉하여지고, 노론측은 경종이 병환이 많고 효종•현종•숙종의 3대에 해당하는 혈통은 경종을 제하고는 왕제인 연잉군밖에 없음을 들어 왕제를 세제로 책봉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노론측 대세에 밀려 1721년(경종 1)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왕세제로 기반을 다지게 된 노론의 입장에서는 좀더 실권을 잡기 위해서 대리청정까지 들고 나오기에 이르렀다.
청정명령은 부당하다는 조태구의 주장에 노론 대신들도 다른 명분이 없게 되었다. 이에 노론의 입장에서는 전번에 올린 대리청정을 허락하여줄 것을 청하였던 연명 차서가 잘못임을 인정, 또다시 청정명령의 환수를 청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한국사신론 이기백 일조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신문화연구원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