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관한 고찰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16.05.21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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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관한 고찰 리포트 입니다
베를린의 변모하는 모습을 자세히 고찰 하여 리포트로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1) 베를린 냉전의 상징에서 유럽의 중심으로
(2)18세계의 바빌론 베를린
본문내용
(1) 베를린
냉전의 상징에서 유럽의 중심으로
1991년 6월 20일. 본Bonn에 있는 독일 연방 하원 의사당에서는 무려 의원 104명이 앞에 나와 소견을 밝히는 가운데 치열한 토론을 펼쳤다. 행정부와 의회의 소재지를 지금처럼 본에 둘 것인가, 아니면 베를린으로 옮길 것인가? 이것이 이날 토론의 쟁점이었다. 11시간의 마라톤 토론이 끝난 후 드디어 투표가 이뤄졌다. 338표 대 320표. 베를린이 이겼다. 이로써 1년 전 통일이 이뤄질 때 베를린을 수도로 삼기로 했던 합의가 최종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1년 5월. 베를린 중심부에 총리 공관이 개관되면서 역사적인 베를린 천도(遷都)는 마무리되었다.
베를린이라는 지명이 문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2세기 말 13세기 초지만,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701년 프로이센왕국의 수도로 결정 되면서부터였다. 이때는 아직 독일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독일은 애국주의 작가들의 시에나 등장하는 염원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프로이센도 독일의 통일을 꿈꾸는 여러 영방국가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7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1871년,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면서 베를린은 비로소 신생 독일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바로 제2제국이다. 그 후 베를린은 제1차 대전의 개전과 패전, 바이마르공화국의 동요, 히틀러의 집권을 차례로 목격했다. 히틀러가 제3제국의 탄생을 선포했을 때도 베를린은 여전히 독일의 수도였다. 그러나 1945년 5월 8일 무조건 항복과 더불어 독일의 수도로서 베를린이 누려왔던 영광도채 한 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승전 연합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군대가 분할 통치 하면서 베를린은 위기에 처했고, 그 위기는 3년 만에 베를린 분할로 이어졌다. 동베를린은 동독의 수도가 되었지만, 서독은 서베를린이 아닌 본을 수도로 택했다. 신생국가 서독의 수상 아데나워(Konrad Adenauer)가 표방한 친 서방정책 때문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