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소설화
- 최초 등록일
- 2016.05.08
- 최종 저작일
-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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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처용설화
2. 이인성 <강어귀에 섬 하나>에서의 처용설화의 소설화
본문내용
1. 처용설화
처용설화는 통일신라시대 동해안(울산 개운포) 지역에서 유래되어 온 이야기이다. 통일신라 말인 제49대 헌강왕(875∼886년) 때에는 서울(서라벌)에서 동해안까지 기와집이 총총히 들어서 서로 담장이 이어졌고 초가는 한 채도 없었다고 한다. 길가에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백성들의 살림이 부유하고 기후마저 순조로워 태평성대였다. 어느 날 헌강왕이 동해안의 개운포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물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로 인해 캄캄하게 되어 길을 잃게 되었다. 왕이 이상히 여겨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천문을 맡은 관리가 말하기를, “이것은 동해용의 조화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행하여 풀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신하에게 명을 내려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짓도록 하라”고 하였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마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사라졌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개운포(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이름 하였다. 동해용이 기뻐하여 아들 일곱을 데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칭송하며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와 춤을 추었다. 동해용의 아들 중 하나가 왕을 따라 서라벌로 갔는데 그 이름이 처용이었다. 왕은 처용에게 미모의 여자와 혼인하도록 허락하고 그에게 급간(級干) 벼슬을 주어 왕의 정사를 돕게 하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너무도 고왔기 때문에 역병 귀신이 탐을 내어 사람으로 변신하여 밤에 몰래 그 집으로 들어가 같이 지내게 되었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누운 것을 보고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나왔다. 그 노래가 <처용가>로 다음과 같다. “서라벌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래 내 것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오?” 이때에 역신이 처용의 앞에 정체를 나타내고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나는 당신의 아내가 탐이 나서 지금 그녀와 관계를 맺었소.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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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 “처용설화의 현대 소설적 번용 연구”, 국어국문학 125호, 국어국문학회, 1999
진형준, “처절한 자아 탐색, 그리고 소설 탐색 : 「강어귀에 섬 하나」,이인성 著 〈書評〉”, 서평문화 36('99.12) pp.15-20 1228-130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1999
정연희, 서술 논리로서의 욕망과 욕망의 언어-이인성 <강어귀에 섬 하나>를 대상으로-, 현대소설연구 Vol. 41 No. 0 (2009), 한국현대소설학회, 2009
문화콘텐츠닷컴 “처용설화 풀어놓기”, (http://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cp0701&index_id=cp07010002&content_id=cp070100020001&search_left_menu=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