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론 고찰
- 최초 등록일
- 2016.05.07
- 최종 저작일
- 2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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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하여 그 근거를 고찰하고 근대화의미 재고찰을 통해 근대화론을 비판하였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과 근거
2. 근대화의 정의에 바탕을 둔 고찰
Ⅲ. 결론 : 식민지 근대화론의 비판
본문내용
Ⅰ. 서론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하에서 조선, 즉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에 대하여 한국인으로서는 많은 반발이 있고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주장이나 이를 주장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와 근거들이 있다. 단지 한국인으로서 식민지배의 역사로 인해 일본이 싫고, 식민지배의 역사가 수치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들은 무엇인가?
Ⅱ. 본론
1.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과 근거
1) 토지조사사업: 봉건적인 농업에서 벗어나 근대적 소유관계를 확립하다.
일제는 효율적인 조세징수기구를 마련하고 토지조사사업을 통한 등기제도의 도입과 토지면적의 정확한 실측을 이루는 등의 제도적 정비를 이루었다. 무조건 조선인으로부터 토지를 수탈할 목적이 아니였음은 1920년대 토지소유현황에서 97.4%가 사유지로 인정되어 조선인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식민지 이전의 조선사회에서 토지소유구조는 전근대적, 중간적 지주제이거나 전근대적 소농사회, 혹은 국가의 수조권적 지배가 강력했지만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토지에서의 사적 소유권이 제도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사유제 확립
1912년 일본의 민법이 이식되면서 ‘소유권’이 생겨나고 재산의 양도가 자유로워졌고 특허권과 저작권과 같은 무형의 지적재산권도 나타나게 되었다.
3) 신분제 해체
신분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철폐되었다지만 제대로 지켜질 수 없다가 을사조약이 맺어진 1905년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일제에게 있어 조선의 신분 차별제도는 자신들의 동화정책을 가로막는 장애물과도 같았기 때문에 양반의 권위를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작로를 닦는 식의 마을 주민 노력동원에서 양반가 자제들이라고 부역에서 면제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참고 자료
오일형(2008), 일제강점기하에서의 경제성장에 관한 논쟁에 대한 연구 : 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발전론에 대한 평가, 석사학위논문, 목포대학교 대학원
전상인(1998),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이해와 오해, 동아시아비평(1), 124-137,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위키백과 검색 키워드: ‘일제강점기’
네이버 학생백과 검색 키워드: ‘근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