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여성 - 여성의 문자 생활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6.03.17
- 최종 저작일
-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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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세종 25년 12월에 창제된 훈민정음은 창제 직후부터 찬사를 받으며 공식적인 문자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자를 중요시하는 당대 분위기 속에서 외면 받았다고 표현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물론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목적이 ‘순수 한글’만을 사용하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최만리의 반대 상소에서도 엿볼 수 있듯 이마저도 당시 세종의 신하들 중 반대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최만리가 '기예에 지나지 않다'고 비판했던 한글은 놀랍게 창제 이후 400여년이 지난 1894년 7월 8일, 마침내 국가의 공문서에 국문을 써도 좋다는 규정을 얻어내었다.
<중 략>
언간의 내용 중에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현풍곽씨언간>에서 엿보이는 내용이 그것이다. 1612년에 작성된 이 편지는 곽주가 외가에 간 아이들에게 언문을 가르쳐 달라고 장모에게 청하는 내용으로, “아우 자식들이 거기에 간 김에 언문을 가르쳐 보내주십시오. 수고로우시겠지만 언문을 가르쳐 주십시오. 말하기 조심스러워 하다가 이렇게 아뢰옵니다”라는 부분이 있다.
참고 자료
백두현, “조선시대 여성의 문자생활 연구”, 어문론총, 제 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