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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에서 기억이 갖는 위상은 어떠한가. 우리의 현재는 이제껏 축적되어 온 모든 기억들의 적재로 구성된다. 즉, 한 개인은 그가 삶 속에서 마주해 온 모든 경험들과 그 경험들로부터 비롯된 기억의 총체인 것이다. 기억이 없다면, 그가 그 자신으로서 오롯이 존재하는 일이란 불가능할 것이다.
어떠한 계기로 인해 기억을 몰수당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주변인들로부터 새로이 이식되고 주입된 기억은, 그것이 설사 실제로 발생한 사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내부에서 재구성된 주관적 지식이다. 주체의 내부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자란 기억이 아닌, 객체에게서 이식된 어렴풋한 이방의 지식은 더 이상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완벽하게 기능하지 못한다.
한 개인에게 기억이 지니는 위상이란 이와 같다. 그렇다면, 개인들의 집단인 민족, 그리고 그들이 있어 온 궤적을 보여주는 역사에 대하여 기억은 어떠한 지위로 역할하고 있을까?
역사란, 하나의 혹은 때에 따라 다수의 공동체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것을 한데 묶어 나열한 연대기이다. 따라서 그것은 공동의 기억을 대표하는 속성을 지닌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모든 이들의 기억을 대변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세상의 모든 인간은 이성애자라는 말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집단기억은 그것이 ‘집단’이라는 대상을 상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집단의 구성원인 각각의 개개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역사학에서 말하는 집단이란 개개인을 한데 눙쳐놓아 뭉뚱그려진 형태로 만들어 놓은 집합이므로 개개인의 기억을 리스트로 뽑아 통계치를 낸 것이 아니라, 같은 속성을 공유하는 집단 전체의 마인드라고 간주되는 것을 자의적으로 서술한다. 즉, “조작된 특정의 형태”라 말할 수 있는 집단기억은 “국가체계의 공적 담론에서 형성된 ‘지배적 기억’”와 궤를 같이하며 공식적 역사 서술의 주된 내용을 담지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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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지식채널ⓔ 영상에서 발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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