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애
- 최초 등록일
- 2015.10.07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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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작가, 백신애는?
2. ‘꺼래이’와 ‘아름다운 노을’의 특징
3. ‘꺼래이’와 ‘아름다운 노을’의 공통점과 차이점
4. 신소설로서의 두 소설
5. 결론
본문내용
1. 작가, 백신애는?
1-1. 인물 백신애
본명이 백무잠인 백신애는 1908년 5월 20일,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읍 창구동 68번지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던 아버지 백내유, 어머니 이내동의 외동딸로 위로 세 살 위인 오빠 기호를 둔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는 한문과 여학교 강의록으로 공부하였고,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원에 이어 자인공립보통학교(兹仁公立普通學校) 교원으로 근무하다 사임하고, 여성동우회(女性同友會) · 여자청년동맹(女子青年同盟) 등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무렵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왔다. 1929년 《조선일보》에 박계화(朴啓華)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단했다. 이듬해에 도일,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에 다니다가 1932년 귀국한 뒤 결혼했으나, 이내 이혼하였다. 1933년경부터 창작에 전념하여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 가운데에서 러시아국경을 넘나드는 한국인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린 〈꺼래이〉(1933)와 가난하기 그지없는 두 며느리, 특히 맏며느리의 출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매촌댁 늙은이'의 애환을 그린 〈적빈(赤貧)〉(1934)이 그녀 나름의 여성 리얼리즘을 확보한 작품이다. 1938년 중국 상해(上海)로 여행가기도 했으나 이듬해에 위장병의 악화로 죽었다. 그리고 유고작으로 ‘아름다운 노을’을 남기게 되었다.
1-2. 작가 백신애
작가 백신애는 “하룻밤 사이에 휘갈겨 응모”한 ‘나의 어머니’가 1929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때부터 문학을 본격적으로 수업하고자 마음먹고 등단 다음 해인 1930년 도일하여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하여 문학과 연극을 공부하게 된다. 그 후 1932년 귀국, 1936년 6월 23일 타계할 때까지 만 10년 6개월에 걸쳐 현재 확인, 미확인 된 것으로는 소설 22편 수필 류 25편을 썼다. 그녀는 여교사로서, 여성운동가로서, 그리고 여류 작가로서 불꽃처럼 살다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앙드레 지드의 말을 인용한 그의 마지막 작품 ‘아름다운 노을’에서처럼 스스로를 완전하게 ‘연소’시켰던 것이다.
참고 자료
김영민, 『한국근대소설사』, 솔, 1997, 145-146쪽.
백신애, 『백신애 선집』, 현대문학, 2009.
백신애, 『백신애 작품집』, 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서영인, 『백신애문학연구-타자인식의 근거로서의 지방성과 자기탐구의 욕망』, 한민족문화연 구, 2009.
이소희, 「백신애 소설의 여성의식 변모양상 연구」, 계명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2006.2.
홍성순, 「백신애 소설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