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사상의 백미 - 정도전의 민본주의에 대한 궁구
- 최초 등록일
- 2015.06.10
- 최종 저작일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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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도전에 관한 논고입니다.
정도전 사상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민본주의에 대한 탐구내용입니다.
여러 저서를 참고하여 작성한 과제로
교수님께서 단독 발표를 시키실정도로 칭찬받은 과제입니다.
A+는 기본으로 챙겨가실수 있는 자료라고 봅니다^^
이 자료에 조금만 더 보충하면 학부졸업논문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주제입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민본주의 사상 형성의 배경
Ⅲ. 정도전의 정치사상과 민본주의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정도전의 민본사상, 또는 민본주의는 정도전의 밑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정신이다. 민본사상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 된다라는 의미로 국민을 국가의 가장 밑바탕이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현대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맥락을 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민본주의에서는 모든 문제를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따라서 정도전은 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중심에 두고, 백성을 보호하며 백성을 평안하게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경국전에 따르자면 “대저 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는 백성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백성은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다.”라며 정도전은 백성을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보다 더 높이 존재하는 군주의 하늘이라고 표현하며 우선시되는 존재로 설명한다. 이 말인 즉, 군주는 자신의 하늘인 백성을 중히 다루며 아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도전은 이러한 민본주의의 위에서 역성혁명을 계획하였고 조선의 건국공신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때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국가에서도 볼 수 없었던 탈왕권중심적 사상이며 당시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왕조 초기의 강력한 군주인 태종 이방원이 지향하던 강력한 왕권에 바탕을 둔 왕조국가에 정면적으로 대치되는 사상이다. 이로 인한 갈등으로 결국 태종에게 죽임을 당하며 이상적인 왕권과 신권의 조화는 현실의 한계를 깨지 못하고 꺾였다.
Ⅱ. 민본주의 사상 형성의 배경
정도전의 민본사상은 1375년부터 1383년 사이의 유배기간에 형성되었다. 이 사건은 정도전의 삶뿐만 아니라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민본주의 정신의 기틀이 되었다. 당시 정도전은 고려의 문한직(文翰職)으로 북원(北元)사신의 영접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러한 외교는 신흥대국인 명나라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영접사직을 거부하였고 이에 전라도 나주로 귀양을 가게되었다. 당시 고려의 상황은 권문세족들의 토지 겸병현상으로 인한 빈부격차의 극심화와 왜구의 잦은 약탈로 인한 백성의 고통과 시련이 끝없이 이어지던 시대이다. 수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정도전은 백성들의 이러한 상황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였으며 그들의 입장에서 백성들의 아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