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는 우리역사
- 최초 등록일
- 2015.05.05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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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려시대 불교의 성향
2. 고려시대의 불교문화의 미(美)
3. 고려 문화의 상징 고려청자와 풍수지리설의 영향
4. 고려시대 농민들의 삶과 장례문화
5. 고려의 행정체제와 군사체제
6. 고려의 성별에 대한 평등과 지역에 따른 인격 차등
7. 소주제에 대한 개인적 견해
본문내용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과제를 하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고려시대 당시의 불교문화와 성향, 고려 농민들의 삶, 고려의 행정체계와 군사체제 그리고 고려의 성별에 대한 평등과 지역에 따른 인격 차등제도 등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수업 내용의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고려시대 불교의 성향
우선 고려는 불교라는 종교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국가이기 때문에 건국 당시부터 멸망할 때까지 수많은 불교 영향을 받았다. 고려의 불교에는 경전을 읽으며 깨우치고, 불상을 숭배하는 교종과 ‘나’ 자신을 발견하는 선종이 있었으며, 교종은 고려 초기 왕권강화와 민심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정치권에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고려 후기로 갈수록 정치권과 결탁하여 많은 폐단을 일으켰다. 선종은 교종의 폐단에서 벗어나 종교 고유의 깨달음을 강조하며 고려 후기로 갈수록 그 영향력이 높아진다.
<중 략>
고려시대에 위에 언급한 내용들이 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고려의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려라는 국가는 어떠한 국정체제를 가지고 운영하였을까. 고려시대에는 호구조사를 통해 호적을 만들어 국역을 부담하도록 하였으며 신분조사를 통해 신분제도를 확고히 하였다. 게다가 국가의 행정력이 지역공동체를 다스리는데 기본 자료가 되었다. 물론 호적에 등록되지 않은 자들은 국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들은 국가의 법적권리를 보장받을 수가 없었다. 고려 건국 때부터 시작한 이 조사는 성종 무렵에 전국적으로 파악이 완결되었다고 한다. 고려 때의 호적을 보면 부측과 모측에 거의 비슷한 비중을 두어 조사하였기에 조상을 추적하는 범위가 넓다는 점, 여기서 여성의 지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여성도 호주가 될 수 있었으며 자녀를 기록할 때는 남녀 간에 차별을 두지 않고 연령순으로 기재하였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 본관을 기록하여 관의 허가에 한해 거주지 이동이 가능한 점이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호적제도는 다양한 위법, 저항행위들로 인해 국가의 지배력이 약화되며 한계를 드러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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