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정몽주와 정도전의 입장차이
1) 정몽주와 정도전의 사상적 배경과 차이
2) 시류를 잘 읽은 사람은 누구인가
3) 대의냐 개인적 야망이냐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떠한 집단이든,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튼튼하고 안정적인 기반위에 계속 성장해나가고 유지되길 희망한다. 그러던 중 그 집단이 붕괴될 상황에 이르러 변화를 맞이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사람들은 보수와 개혁 혹은 개혁과 혁명이라는 두가지 입장에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기존의 틀 내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건지, 기존의 틀을 버리고 새로운 조직을 창립할 것인지. 그리고 더 많은 권력과 설득력을 가진 분파가 이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러한 양자택일의 순간은 여말선초, 고려말의 격변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고려 말은 대내외적으로 새로운 개혁이 필요한 시기였다. 대내적으로는 권문세족들의 부정부패,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불교적 폐단은 날로 골이 깊어져 사회의 역기능으로 작용했다. 대외적으로는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되는 시기로서 새로운 대외의식의 정립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이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고려사회의 뿌리 깊은 모순과 대륙에서 일어나는 큰 변동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개혁세력, 소위 ’신진사대부’가 등장했다. 이들은 성리학을 사회개혁의 배경으로 삼아 당시 고려 내에 위치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개혁해나가는 실질적인 주체들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회개혁의 실질적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된 신진세력들은 성리학을 근거로 고려에 내포한 여러 모순들을 척결함에 있어 공통된 입장을 견지해왔다. 많은 이들이 현실적으로 무리였던 최영의 요동정벌보다 명백한 쿠데타의 성격을 가진 위화도 회군을 더 지지하고 공감해왔다. 그러나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가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정도전의 야망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 있는 고려조정의 신진세력들은 사회개혁방법론에 뚜렷한 차이를 보이면서, 체제유신을 주장하는 보수파와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꾀하는 혁명파로 입장이 나뉘는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각 분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단연 정몽주와 정도전이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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