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청대 문화와 통제 정책
- 최초 등록일
- 2015.04.04
- 최종 저작일
-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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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명대의 문화
1) 양명학의 등장과 경세실용사상의 발달
2) 상공업·서민문학·건축의 발달
3) 서양문물의 전래
4) 통제정책
3. 청대의 문화
1) 고증학
2) 상공업·서민문학·건축의 발달
3) 서양문물의 전래
4) 통제정책
4. 맺음말
* 참고자료
본문내용
1. 머리말
중국사에서 명·청대를 같이 묶어서 설명하는 것은 많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두 왕조는 공통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왕조였다. 명 중기부터 기존의 주자학 위주의 사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였고 점차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서민문학도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두 왕조는 황제권 강화를 위해 사회 통제 정책을 실시한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명·청대의 공통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명대 문화
1) 양명학의 등장과 경세실용사상의 발달
명의 태조 주원장은 몽골의 오랜 지배 하에서 변질된 한문화의 부흥에 온힘을 쏟으면서 당 송 문화를 환원하려는 복고주의적 정책을 취하였다. 명초의 문화정책은 중국 전통문화의 재생과 부흥이라고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자연히 문화계의 창의력이 결여되었다. 뿐만 아니라 태조의 황제권강화를 위하여 군주전제체제를 합리화하는데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는 주자학을 명의 국가통치의 기본으로 수용하였으므로 주자학은 체제 이데올로기로서 확고한 지반을 굳히게 되었다.
이러한 주자학 일변도의 학문경향은 성조 영락제시대에도 계승되었다. 영락제(永樂帝)는 주자의 학설에 입각하여『사서대전(四書大全)』,『오경대전(五經大全)』,『성리대전(性理大全)』과 같은 국가적 대사업을 추진하여 주자학에 의한 사상의 통일을 추진하고 과거시험도 오로지 이들 책에 의한 해석으로 답을 쓰게 하였다. 그러므로 사상계는 극도로 획일화되었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상기풍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군신의 의가 절대화되고 사회가 변화하여도 주자학의 이 만이 강조되었다.
이리하여 명초에는 관과 학의 유착상태가 일반화되어 사상과 학문의 발달을 가로막게 되고 자유로운 연구와 토론이 제약되면서 주자학은 점차로 침체의 늪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계의 침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 바로 명의 중기에 나타난 양명학(陽明學)이다.
참고 자료
신채식,『동양사개론』, 삼영사, 1993년
왕예린,『황제의 영혼을 훔친 금지문자』, 애플북스,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