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 (논술, 독후감, 조사 리포트 / A+)
- 최초 등록일
- 2015.03.31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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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에 대한 주제로 작성한 리포트입니다.
본래 <민음 지식의정원 서양사편 03>을 읽고 작성한 독후감이나, 독후감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중세 유럽이 과연 암흑시대였는가에 대한 관련 역사와 이야기를 풀어 서술하는 형식을 택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관련 역사서 독후감이나 중세유럽, 암흑시대와 관련한 리포트에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목차
1.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
1) 중세 유럽에서 기독교의 영향력
2. 중세는 암흑시대였다.
1) “Nach Canossa gehen”
2) 신의 시대
3) 갈릴레오의 좌절
3. 중세는 암흑시대가 아니었다.
1) 다 빈치와 마르틴 루터
2) 호텐토트 비너스
본문내용
<민음 지식의정원 서양사편 03>은 게르만족의 침입으로부터 백년전쟁까지의 역사 사이에 유럽에 존재했던 민족과 사회체계, 기독교, 질병, 전쟁 등의 역사에 대해 길지 않은 글들로 담아내고 있다. 한편, 나는 그 어떠한 시기의 역사라도 사회와 문화,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조류가 한데 어울려 흘러가며 빚어지기 마련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중세에 대한 관점만은 약간 다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세 사회 전반의 다양한 분야가 함께 흐르며 중세시대의 가치가 형성되고 그 역사가 서술되었겠으나, 그 다양한 조류 중에서는 단연 기독교의 영향력이 가장 독보적이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프랑크왕국과 교황의 협력은 중세 유럽이 기독교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이슬람세력을 물리치며 교황으로부터 ‘기독교 세계의 보호자’란 칭호를 수여받았고, 페피누스 3세는 로마를 공격한 롬바르드족을 토벌하여 이탈리아 중부의 영토를 빼앗아 교황에게 기증하였다. 서유럽의 대부분을 복속시킨 카롤루스(샤를마뉴) 대제에 이르러서는 교황이 친히 왕을 방문하여 황제 대관식을 치러 주기에 이른다. 이렇듯 프랑크 왕국은 교황의 기독교 세력과 서로의 필요에 의한 유대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고, 중세 초의 유럽에서 가장 기세를 드높였던 그 영향력으로 인해 베르됭조약이후의 중세 역사에 있어서도 그 영향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중세 기독교는 전 유럽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었고, 그 우두머리인 교황은 국왕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된다.
<중 략>
1077년 1월 28일, 북부 이탈리아의 카노사 성문 앞에서 허름한 수도사 거적을 걸치고 신발도 신지 않은 청년이 무릎을 꿇은 채 휘날리는 눈보라를 맞고 있다.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 자리에 꿇어앉아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걸인이었으나, 놀랍게도 그의 정체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4세였다. 오랜 석고대죄 이후, 마침내 성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초라한 행색의 황제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성직자 임명권에 대한 반발의 죄를 고해하며 용서를 구하고서야 파문을 종결 받을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프랑크 왕국”
위키백과 “카노사의 굴욕”, “오토 폰 비스마르크”
두산백과, “암흑시대”
위키백과“세라 바트먼”
민음 지식의정원 서양사편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