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헤석 약력
- 최초 등록일
- 2015.02.07
- 최종 저작일
- 2015.02
- 5페이지/ 어도비 PDF
- 가격 1,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출생~1948년 12월 10일 사망,향년 53세)은 일제 시대 최초 조선인 여성 일본 유학생이었으며, 최초의 페미니스트 여성 운동가였다. 또한 그녀는 조선인 최초의 여류 서양 화가였으며, 조선인 최초의 여류 단편 소설가였다. 최초로 세계 일주 여행을 했으며, 이화학당에서 3·1운동을 계획한 독립 운동가였다. 19세에 최초로 여성 단편 소설을 써서 여성 작가가 되었고, 서양화전공자로 서울에서 화려한 미술 전시회를 개최한 여류 화가였다. 나참판 댁 손녀, 나 군수 댁 부잣집 딸로 태어났으며, 가까운 친척 사촌오빠 나중석(함북 관찰부주사, 정3품 통정대부)이 설립한 수원 삼일여학교(현 수원 매향중학교)를 졸업했고, 서울에서 정신여고보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수시로 화제의 인물로 보도되었다. 졸업 후, 일본 동경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조선인 최초 여의사 허영숙, 김수창과 함께 가장 우수한 여자 유학생으로 손꼽혔다.
<중 략>
사회 운동가 오빠 나경석의 영향으로, 진보적 노동 운동을 함축하는 판화 「早朝」가 제작되어,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 기관지 『공제』(共濟)창간호에 실렸다. 1920년 김일엽 등과 『신여자』를 창간했다. 1920년 나혜석은 직접 동인지 『폐허』의 동인을 구성했고, 김억, 김일엽, 염상섭, 오상순 등과 교류했다. 『폐허』는 조선총독부의 압력으로 폐간되었다. 당시 이화전문학교 미술 강사로 근무했다. 1920년 결혼식 청첩을 신문에 일 연속 10 광고한 후, 전처와 사별한 변호사 김우영과 서울 정동교회에서 김필수 목사 주례로 결혼했다. 신혼 여행지는 최승구의 묘지가 있는 전남 고흥이었다. 남편 김우영은 그녀의 변론을 도왔으며, 1920년 3·1운동 주동자 김마리아, 황애스터 등의 재판 변론을 담당했다. 1921년 『백조』동인으로 참가했고, 경성일보 내청각에서 최초 여성 유화 개인 전시회를 개최했다.
참고 자료
나혜석기념사업회. 『원본 정월 라혜석 전집』. 서정자 엮음. 서울: 국학자료원, 2001년.
http://ko.wikipedia.org/wiki/나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