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독립협회의 활동
1) 독립문 건설과 모금 운동
2) 신문·잡지의 간행
3) 계몽활동과 토론회 개최
4) 국권수호 및 구국운동
5) 만민공동회와 민권보장운동
6) 의회설립운동
3. 독립협회의 사상
1) 자주 독립 사상
2) 자유 민권 사상
3) 자강 개혁 사상
4. 독립협회의 해산
5.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독립협회는 1896년(고종 33년) 7월 2일 조선 한성부에서 서재필, 안경수, 윤치호, 이상재, 이승만, 박정양 등에 의해 결성되었다.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실패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은 1894년 12월 정부의 사면령이 내려지고 1895년 박영효, 유길준 등의 권고로 귀국하였다.
귀국 직후 서재필은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며 백성들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백성들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우선 말과 글, 국내외 사정을 알아야 되므로 신문을 발간할 것을 주장하여 1년만인 1896년에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그러나 서재필은 “말과 글, 국내외 사정을 안다고 해도 백성들 스스로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백성들에게 권리를 주지 않는다, 자유와 권리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조정과 관청을 향해 민중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을 만들 것을 역설하였다. 이에 윤치호, 이상재, 유길준 등은 적극 동조하였다.
당시에는 민권옹호와 정치개선의 촉진이라는 강령 하에 1896년 2월 결성되었다가 활동이 지지부진해졌던 건양협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본래 개화파에 속했던 서재필을 중심으로 이상재, 이승만, 윤치호 등이 주도하고, 이완용, 안경수, 박정양 등 당시 정부 고위관료들과 남궁억, 안창호 등의 지식인들도 참여하여 1896년 7월 2일 한성부에서 독립협회를 결성하였다.
독립협회는 초기에 지식인들과 사대부, 관료들의 사교클럽과 시사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나, 기타 사대부와 중인층, 지식인층까지 참여시켰고, 이후 본래 설립 목적인 민중 계몽을 위해 일반 백성들도 집회에 참여시켰다. 백정과 노비 등의 참여를 놓고 최초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으나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의 적극 지지로 백정과 노비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협회는 1896년 7월부터 1899년 12월까지 서구 문물 수용과 내정 개혁, 민중의 정치 참여를 요구했고, 열강의 주권침탈에 저항하였으며 지배층의 중세적 인권유린의 상황 속에서 주권 독립 운동, 민권운동, 자강운동, 내정개혁 등을 주장하고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41』 -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2003.
신용하, 독립협회와 개화운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이현희, 한국사총론, 일신사, 1988.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근대사강의 한울, 1997
[네이버 지식백과] 독립협회 [獨立協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